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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작은누나의 생일을 맞아 형제들이 한정식집 '들밥차반'에 모여 함께 점심 먹었다. 막내를 제외하면 모두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 보니 4형제가 모여도 5명이 전부다. 작은누나는 올해로 70, 옛날로 따지면 꼬부랑 할머니인 셈이다. 실제로 아버지 여동생들인 고모들은 모두 70을 갓 넘긴 나이에 작고하셨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성품이 어질고 정이 많지만, 충청도 사람 특유의 감정의 결에서 기인하는 의뭉스러움과 우유부단함이 있다. 나와 동생은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도 그렇다. 부모님과 손위 누나들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문 씨 아니랄까 봐 선택장애와 (상대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온정주의로 인해 자주 곤혹스러워한다. 생전 어머니는 '네가 착하고 정이 많아서 그런 거란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정말 정 ..

셀로판지를 덧댄 것처럼 아침부터 하늘은 극적으로 흐려 있었다. 출근할 때까지는 비는 없었다. 점심이 지나고 오후가 되면서 하늘은 더욱 어두컴컴해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며 ‘날만 잔뜩 흐리고 비는 안 오네요. 시원하게 내렸으면 좋겠는데’라며 혼잣말할 때, 마치 내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비 내리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강해 보이는 굵은 소낙비였다. 내 눈높이보다 높은 북쪽 창문으로는 하늘의 표정만 읽을 수 있을 뿐 거리의 풍경은 보이지 않았다. 복도로 나가 창가에 서니, 우산 쓴 행인들이 마치 물 위를 떠가는 동그란 동심원들 같았다. 잠시 세상은 빗속에서 흐릿했고 비를 품고 있던 하늘은 묵시의 표정으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지극히 아름다워 보였다. 요 며칠 불면에..

예보대로 오후 5시까지는 날씨가 쾌청했고, 5시가 지나면서 날이 흐려지고 비 내리기 시작했다. 점심 이후까지도 날씨가 화창해서 혹시 혁재와 은수에게 연락이 올까 봐 작가회의 임시총회에도 불참한 채 전화를 기다렸지만, 저녁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약간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들도 사정이 있으려니 하고 이해하기로 했다.❙다만 더는 그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후배 창길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창길에게 전화했더니 그는 때마침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가 있었다. 창길은 내가 “오디오 나를 사람과 승합차 수준의 큰 차가 필요한데, 혹시 네가 수고해 줄 수 있겠어? 일당 줄게”라고 했더니, “일당은 무슨,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 주세요” 하며 시원하게 대답해 주었다. 고마웠다. 다음 주쯤 적당한 시간을 잡아 오..

오늘은 한낮의 기온이 30도까지 올라 매우 더웠다. 특히 옥상이 있는 단독주택 우리 집의 실내는 아파트보다 훨씬 덥다. 그런데 채소 가게 가려고 집 밖으로 나왔더니, 웬걸, 볕이 뜨겁긴 했지만, 바람이 솔솔 불어 집안처럼 덥게 느껴지진 않았다. 초여름에는 집안보다 밖이 시원하고, 초겨울에는 집안보다 밖이 따듯하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단독주택은 대개가 그렇다. 우리 집에서도 내 방이 유독 덥다. 3면이 (남쪽 면, 동쪽 면, 옥상인 윗면) 햇볕에 달궈지기 때문일 것이다. 한여름에는 사우나처럼 달궈졌다가 이튿날 아침 무렵에야 비로소 식는다. 옥상 있는 단독주택은 열대야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밤 9시쯤 혁재가 전화했다. 수화기 너머로 재즈 음악 소리가 들렸고, 간간이 사장인 성식의 웃음소리..

작가회의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회장은 회장대로 이사들은 이사대로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될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고, 내밀하게 주고받은 메시지까지 필터 없이 토론방에 오픈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모든 사태는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지만, 이번 사태는 회장의 책임이 크다는 게 다수 회원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회장이 자기 얼굴에 침 뱉기 식의 이 치졸한 폭로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회원들의 이견을 조율하고 갈등을 봉합해야 할 회장이 분열과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그는 여전히 이번 사태가 자신과 타 문학단체(인천 문인협회) 집행부 간의 격의 없는 대화를, 당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발언 그 자체만을 문제 삼아 곡해한 사무처장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며 억울해하고 있다. 물론..

치과 치료받고 오다 우리 집에 들른 큰누나와 근처에 있는 중국집 ‘전가복’에서 함께 식사했다. 작은누나는 짜장면 큰누나는 볶음밥 나는 흰색 짬뽕을 주문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중식이었다. 요즘 누나들과 자주 만난다.❚얼마 전, 작은누나와 대화 중에 내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기가 빨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져. 그냥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좋아”라고 말했더니, 작은누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거 무척 안 좋은 습관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폐쇄적인 인간으로 변하게 될 텐데……”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해 보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모든 사람을 불편해하는 게 아니라 가족들을 불편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장 힘이 되어야 할 가족에게서 불편함을 느끼다니, 이건 무조건 나에게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