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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한여름 날씨였지만, 그래도 휴일은 여유롭다. 미안할 정도로 하루를 함부로 쓰고 있는 요즘이지만, 휴일에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져 있어도 별로 죄스럽지 않다. 지키고 싶은 것은 시나브로 나를 떠나고, 갖고 싶은 건 한결같이 손에서 멀지만, 나에게도 일요일은 어김없이 돌아온다. 그 공평함이 고맙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나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아도 편견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이 나는 고맙다. 내가 울 때 함께 울어주지 않더라도, 그저 내가 우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봐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고마울 때가 있다. 혼자 울고 싶을 때, 나만의 슬픔에 온전히 빠져있고 싶을 때가 나에게는 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슬픔, 그 슬픔의 내밀한 속살을 들키고 싶지 않아 혼자 울고 싶을 ..

스포티파이와 멜론을 비교하면 두 개 모두 일장일단이 있단 말이지. 현재 스포티파이는 무료로, 멜론은 유료로 이용 중이다. UI는 멜론이 훨씬 직관적이라 이용하기 편한데, 이게 정말 그런 건지, 아니면 오래 (얼추 10년 이상) 사용하다 보니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선 스포티파이보다는 멜론이 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기기 연동성은 멜론이 스포티파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스포티파이는 휴대전화, 노트북, 태블릿, 네트워크 오디오 중 무엇을 사용하더라도 나머지 기기들에 그 이용 정보가 뜨기 때문에 기기를 넘나들며 음악을 재생할 수 있다. 이를테면 휴대전화로 음악을 듣다 태블릿을 켜면 휴대전화에서 듣던 음악 정보가 태블릿에도 실시간으로 뜨기 때문에 그대로 이어서 (재생 기기를 바꿔가며)..

금요일은 참 묘해. 주말도 아닌데 마치 주말 같은 느낌이 든다니까. 그래서일까 금요일 아침에는 마음이 무척 느긋해져. 젊은이들은 금요일 앞에 ‘불타는’이라는 수식어(관형어)를 붙이곤 하지. 금요일 밤에 화끈하게 놀고 주말 이틀 동안 푹 쉬자는 말인 듯해. 주 5일 근무가 시작된 후 만들어진 풍경이지. 반면 일요일 오후가 되면 그때부터 이미 이튿날 출근과 기다리는 일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온몸을 감싸오기 시작하지. 아무튼 토요일은 주말의 설렘을 금요일에게 빼앗긴 꼴이 된 거야. 출근하는 직장인들도 금요일 아침에는 발걸음이 가볍지. 그런데 희한한 건 집에서 이미 쉬고 있는 나조차도 금요일이면 괜스레 기분이 설렌다니까. 마치 한 주가 다 간 거 같고, 뭔가 넉넉한 여유와 나만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은준이 우리 동네에 왔다. 오랜만에 ‘충청도집’ 주꾸미볶음을 먹었다. 근처 사는 장 화백도 불러 함께했다. 소주 6병을 셋이 나눠 마시고 1차를 정리한 후, 장 화백 화실 근처 ‘역전 할머니 맥주’에서 생맥주로 2차를 했다. 맥줏집에서 나와 장 화백은 취했다며 먼저 돌아가고 나와 은준은 ‘한신우동’에 들러 각각 콩국수와 우동을 먹었다. 콩국수 맛은 내가 아는 콩국수 전문점에서 파는 국수 맛과 겨룰 만했다. 뜻밖의 발견이었다. 여름 한철 메뉴라고 하는데 당분간 이곳에 들르면 콩국수를 먹을 생각이다. 식당을 나와 늘 그랬던 것처럼 은준은 우리 집에 들르겠다고 했고, 또 늘 그랬던 것처럼 그는 집 앞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2통을 사서 내게 주었으며, 집에 와서도 늘 그랬던 것처럼 모차르트와 베토벤 음악 서너 ..

서재에 오디오 시스템이 들어오고 나서 생활 방식, 이를테면 휴식 시간을 이용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이전 같으면 유튜브를 보거나 낮잠을 잤는데, 요즘에는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확실히 뭔가 일상이 풍요로워진 것 같긴 한데, 부작용은 있다. 자꾸만 앰프나 스피커를 비롯한 각종 오디오 장비를 검색하며 구매 욕망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그들은 하나 같이 ‘올 게 왔군’ 하는 표정이었다. 큰 매형은 초기 오디오에 입문할 때 무려 3천만 원 상당의 시스템을 들여놔서 가족들을 기함하게 했다. 그 흔적의 일부가 나에게 온 앰프와 스피커들인데, 아무튼 이후에도 매형은 오디오 잡지를 구독하고, 동호회에 나가며 오디오 관련 정보를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6월 25일 공고가 난 임용시험 관련 제출 서류를 보운 형과 함께 최종적으로 정리해 총무과에 들러 접수했다. 5년 전 처음 들어올 때와 기분이 사뭇 달랐다. 당시 문화예술 정책특보 면접시험은 최종까지 올라온 6명이 보았는데, 나 빼고는 모두 파릇파릇한 젊은이들이었다.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괜스레 젊은이들의 취업 기회를 빼앗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사실 정책특보는 정책 전문가가 앉는 자리가 아니다. 정책은 수년간 오로지 해당 업무만을 열심히 연구하고 고민해 온 유능한 장학사님들이 담당하는 것이다. 특보는 그들과 소통하며 현장을 매개하고 혹시 놓친 현장의 합리적 핵심을 통해 교육청 교육사업이 더욱 풍부해지도록 돕는 역할을 하면 된다. 직접 청에 들어와 5년간 일해 보니, 특보의 임무와 역할은..

산 카페 성식의 모친이 운명했다. 성식의 모친은 수년째 요양병원 병상에 누워 식물인간 상태로 살아오셨다. 그런 모친을 바라보는 성식도 불쌍하고 자식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모친도 불쌍하다. 성식은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자식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이제 숨을 거두시고 편안하게 하늘나라 가시는 게 엄마에게도 축복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럴 때마다 새벽에 홀로 주무시듯 하늘에 드신 내 엄마의 소천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다시 생각해도 고맙고 신비스러운 순간이다. 아무튼 그래서였을까, 부고를 받은 순간, 안타까운 마음 한편에 ‘아, 이제 이승의 고된 삶을 마감하고 하늘에 드셨구나.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퇴근해서 집에 와 옷 갈아입고 성모병..

일주일에 한두 통씩 청첩이 온다. 확실히 몇 년 전부터는 부모님 상을 전하는 부고보다 자녀들의 결혼식 청첩이 훨씬 많다. 이제 내 또래들이 그럴 (할아버지가 될) 나이가 된 것이다. 내 아들도 32살, 결혼 적령기인데 교제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32살 적지 않은 나이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대체로 결혼을 30대 중반쯤에 하는 추세니 아직은 노총각 소리를 듣지는 않는 모양이다. 요즘처럼 많은 청첩을 받다 보면 자식을 결혼시키는 친구들이 무척 부럽다. 직접 식장에 가서 친구 자녀들이 버진로드를 함께 걸어가는 걸 보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이상해진다. 부러움이나 질투만도 아닌, 정말 묘한 감정이다. 아내 없이 자식을 결혼시키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오후에 낮잠 자고 있을 때, 장의 연락을 받았다. 시를 두 줄 썼는데 뒷부분을 이어가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다는 둥 새 책을 주문했는데, 지금 막 도착했다는 둥, 뭐 그리 특별한 용건은 없고, 그냥 블라블라블라! 결국 술 먹자는 얘기를 돌려 돌려 말하기에 내가 시간 장소를 정했다. 사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배도 고프고 해서 고기나 먹을까 생각 중이었는데 마침 전화가 온 것이다. 6시쯤, 장을 만나 집 근처 단골식당 강원정육점에서 가서 오겹살을 먹었다. 이곳은 1인분이 다른 곳과 달리 300g이다. 그래서 내가 3인분을 주문하자, 장은 "아, 형, 너무 많을 거 같은데요" 했다. 하지만 나는 배도 고프고, 목살도 오랜만에 먹는 것이라서 그냥 주문했다. 결국 장의 말이 맞았다. 꾸역꾸역 최선을 다해 먹었으나..

아침 운동할 때, 문득 이것저것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CMS 출금 명세서를 확인하다가 잠시 마음 독하게 먹고 그간 밀린 심사비와 교정비를 달라고 신문사와 출판사에 문자를 보냈다. 당연히 받을 걸 달라는 문자인데도 발송 버튼을 누를 때는 심장이 콩닥거렸다. 다행히 담당자로부터 이내 그러겠다는 답장이 왔다. 다소 맘이 편해졌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렇게 하겠다는 답장은 있었다. 실행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 날이 흐렸다. 흐린 하늘처럼 내 마음도 어제부터 종일 흐렸다. 지난주 올랐던 주가는 어제오늘 이틀 동안 모두 빠졌다. 그야말로 허무한 일주일이다. 어느 정도 이윤을 얻었을 때 매도했어야 했는데, 매도 시점을 놓치고 그냥 놔뒀더니 손실금이 다시 마이너스 천만 원이 되었다. (솔직히 더 오를 줄 알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