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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익숙하거나 낯선, 혹은 더욱 정교해진 그의 영화 리얼리즘 5월의 마지막 날 즉흥적으로 극장을 찾았습니다. 얼마 전 칸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란 영화를 보기위해서였지요. 그 동안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빼놓지 않고 모두 봐왔지만 오늘 본 영..
이모는 동이 틀 무렵 엄마의 병실을 찾아왔다. 아직은 어두운 시간이었지만 엄마는 그 어둠 속에서도 이모의 얼굴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이모는 열여섯 살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나로 묶은 긴 머리, 검은 뿔테안경, 손수 지은 물방울무늬 여름 원피스 차림의 이모. 이모는 무덤덤한 ..
존재에 대한 자신만의 사랑법 혹은 함께 지나온 시대에 대한 반성적 성찰 -김정렬 형의 초상화에 대하여 문계봉(시인) 얼굴에 드러난 표정과 주름, 그것은 존재와 존재를 구별시켜주는 각각의 역사이자 삶의 흔적입니다. 모든 존재들은 얼굴의 표정과 주름으로써 자신의 삶과 이력(履歷)..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 이바라기 노리코는 오사카 출신의 시인으로 제국여자약전(현 토호東邦대학) 약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제국 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보고 극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 희곡·동화 등을 쓰면서 문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결혼 ..
미추홀 주민들의 자부심이 된 마을축제의 현장 ―2018학산마당극‘놀래’ 심사평 1. 들어가며 2018학산마당극 놀래의 현장은 매번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신명의 장이었다. 어느덧 6년의 역사를 쌓아온 학산마당극은 이제 주민 스스로 만들어가는 마을축제의 전범(典範)으로서 오롯이자리매..
[서평] 불면은 때때로 나를 깊게 만든다. ―문계봉, 『너무 늦은 연서』, 실천문학사, 2017 김경철 시인 나무무늬가 선명한 관, 바람에 흔들리는 조등, 짖지 않는 개, 문밖 버려진 링거 병 속에서 들려오는 사신의 휘파람 소리, ―문계봉, ‘죽음의 얼굴’ 부분 기계의 적은 먼지이고 바위의 적은 물방울이다. 그렇게 단단할 것 같은 강함은 부드러움에 의해 무너진다. 천년 바위를 뚫는 저 물방울을 보라! 한 방울 한 방울의 적의는 얼마나 하찮은가? 여기, 문계봉 시인의 시집 『너무 늦은 연서』를 통해 나는 부드러운 적의를 본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옛 성현의 말씀은 언뜻 들어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나, 그것을 실천하고 행동하는 데에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살면서 금세 알 수 있다. 혹 부..
소창, 그 흰색에 담긴 삶의 정조와 그리움을 복원하다 문계봉(시인) 인천 곳곳 그녀의 시선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로 서은미 작가는 부지런합니다. “사진을 찍는 것이란 매 순간 강렬하게 인생을 음미하는 것”이란 마크 리부의 말을 빌린다면 그것을 열정이라고 말해도 무..
삼막사 백구 한 떼 회오리가 창자를 훑고 지나갔다 오래 묵은 단풍나무 뿌리 젖은 흙을 뒤집어 쓴 채 끌려나와 내팽개쳐졌고 모래 잔뜩 낀 여린 손톱들 젖은 빨래처럼 아카시 등걸에서 펄럭였다 햇살은 어젯밤 순장당한 처녀의 낯빛 때늦은 채송화 그 심난한 폐허 속에 골난 계집아이처럼..
빨래 줄에 이불 홑청 빨아 널고 한 숨 푹 자고 오겠다던 엄니 장곡사 주지스님이 몇 번 바뀌어도 돌아오지를 않았다 엄니 몸에 꼬리가 자라나 개가 되어 돌아왔다는 풍문과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새가 되어 집 앞 감나무에 앉아 갔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부처를 부르지 않으면 지나갈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