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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봄날의 훼방꾼들 (3-10-월, 맑음, 미세먼지 최악!) 본문

일상

봄날의 훼방꾼들 (3-10-월, 맑음, 미세먼지 최악!)

달빛사랑 2025. 3. 10. 23:36

 

대기질은 종일 최악이었다. 나날이 화생방 훈련을 하는 기분이다. 오랜만에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비번이었지만, 보운 형이 강화 난정평화교육원으로 1박 2일 출장 간 탓에 사무실을 ‘지키려고’ 출근한 거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마을 교육 담당관인 김 선배는 헤드폰을 쓴 채 뭔가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발을 했는지 머리가 단정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다인아트 윤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엊그제 교정 끝낸 자서전의 저자가 본문 내용에 첨가해 달라며 추가 원고를 보낸 모양이었다. 교정해서 본문에 넣은 후, 재편집해서 윤 대표에게 보냈다. 윤 대표는, 소설집을 내달라며 누군가 가져왔다는 원고지 1,500매 분량의 소설 원고도 내게 보내며 “선생님, 이거 출판해도 되는지 어떤지 한번 읽어봐 주세요. 내가 볼 때는 좀 아니다 싶기도 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알았어. 점심 먹고 연락할게” 대답한 후 식사하러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와우! 대기줄이 너무 길었다. 식당에 입장하려면 최소 3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청사 밖으로 나와 단골 식당 쪽으로 걸어가다가 마음을 바꿔먹고 집으로 왔다. 사무실에서 내 방까지는 (차만 제때 타면) 15분밖에 안 걸린다. 대기하느라 30분 넘게 줄 서 있느니 차라리 집에 들러 밥 먹고 오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집에 와서 식사하고 돌아오다가, 김 선배가 이발한 게 문득 떠올라 나도 집 근처 미장원 들렀다. 거울 앞에 앉자마자 사장님이 대뜸 “이번에는 머리 스타일을 바꿔 보는 게 어때요? 투 블록이라고 요즘 젊은 사람들 많이 하는 머리예요.”라고 말해서 잠시 고민했다. 파마 상태로 제법 길게 기른 머리를 갑자기 짧게 잘라내야 하는 게 아쉽기도 했고, 무엇보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스타일이라서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알았어요. 이번에도 사장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하고는 그냥 모든 걸 맡겨 버렸다. 처음 파마를 한 것도 사장님의 권유 때문이었는데,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사장은 빠른 손놀림으로 귀를 덮고 있던 옆머리를 과감하게 잘라냈다. 뭉텅뭉텅 머리칼이 잘려나갈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잠지 후 머리를 완성하고 나더니 사장은 “와, 너무 예뻐요. 뒷머리를 한 번 거울로 보세요. 너무 예쁘지 않아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마치 자기 작품을 보며 뿌듯해하는 디자이너 같았다. 거울을 들어 머리 뒷부분을 보니 정말 깔끔하기는 했다. 어언 1년간 긴 파마머리로 지냈는데, 이전처럼 다시 짧은 머리로 돌아간 것이 솔직히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땀이 많은 나로서는 날이 더워지기 전, 짧게 다듬어 놓을 필요는 있었다. 무엇보다 새로 해본 머리 스타일이 이번에도 나쁘지 않았다.

 

사무실에 돌아왔더니 김 선배가 “이발했나 봐요. 괜찮은데요. 잘 어울려요” 하며 이발한 걸 아는 체했다. 나는 조바심 나서 다시 한번 물었다. “그동안 보셨던 내 머리 스타일하고는 상당히 다르죠? 사장님이 하도 권하길래....... 어때요? 괜찮아요?” 했더니 김 선배는 “먼저 머리보다 백 배 나아요. 젊어 보이고 좋네” 하며 다시 내 머리를 꼼꼼히 스캔했다. 말이라도 고마웠다. 하긴 나이 든 양반들은 귀 나오고 뒷머리 깔끔하게 다듬으면 무조건 예쁘고 맘에 든다고 말하긴 한다. 사실 머리 스타일은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다행히 나도 어느 정도 맘에 들었고, 특히 보는 사람도 좋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서 혁재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님의 안부를 물었다. 우려했던 대로, 최근 어머님은 상태가 안 좋아져 응급실에 다녀왔고, 입원해야 하는데 병실이 없어 일단 요양원으로 다시 모셔 왔다며 혁재는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급실에 실려 가 치료를 받고, (병원에서는 어떻게 하든 목숨은 살려 놓는다) 상태가 조금 호전되면 다시 퇴원했다가 악화하면 또 입원하고……. 이건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분들의 일반적인 패턴이다. 엄마도 그랬다. 10월에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퇴원한 후 상태가 줄곧 안 좋아지셨고, 결국 1월에 돌아가셨다. 아마 혁재도 마음의 준비를 해둬야 할 듯싶다.

 

은준에게도 전화를 받았는데, 손모 시인과 임기성, 이모 시인 등과 만석동 (임기성의) 주점에서 한잔하기로 했다며 나도 오라고 했다. 하지만 사양했다. 피곤하기도 했고, 일단 거리가 너무 멀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미련이 남아 ‘아니야, 그냥 한잔하자고 할까?’ 생각하며 몇 번이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긴 했지만 결국에는 유혹을 이겨냈다. 특히 술 약속(유혹)을 거절하면(이겨내면) 무척 뿌듯하다. 전철 타고 오면서 내내 마음이 가벼웠다.

 

저녁 먹고 혈당을 측정해 봤더니 이전보다 상당히 높아졌다. 물론 식후에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긴 했지만, 그래도 200대가 나왔다. 게다가 한 번 올라간 혈당이 쉽게 떨어지질 않는다. 냉면과 아이스크림 때문이다. 알면서도 왜 끊질 못하는지 모르겠다. 내일부터는 정말 아이스크림을 끊을 거얏! 아이, 짜증 나! 오는 봄을 산뜻하게 맞고 싶었는데, 정치도 먼지도 건강도 개운치가 않다. 도대체 내 즐거운 봄날을 방해하는 훼방꾼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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