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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맛있는 뭇국을 먹으며 (11-13-수, 맑음) 본문

일상

맛있는 뭇국을 먹으며 (11-13-수, 맑음)

달빛사랑 2024. 11. 13. 23:17

 

큰누나가 집에 왔다. 누나는 오는 길에 소고기와 무를 사와 뭇국을 끓였다. 누나는 속이 안 좋을 때면 다른 자극적인 음식은 겁나서 못 먹고, 아니 당기질 않고 오로지 소고기를 넣은 뭇국만 생각난다고 한다. 푹 끓여 고깃국물이 진해진 뭇국을 먹으면 탈 났던 속도 편안해지고 입맛도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런(속이 안 좋은) 날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도 속이 안 좋을 때나 입맛이 없을 때면 나에게 "아범, 나 다른 건 필요 없고 소고기 반 근만 사다가 뭇국 좀 끓여줘"라고 부탁하시곤 했다. 연세가 드실수록 소화 기능이 떨어져 소고기 뭇국을 끓이는 횟수가 많아졌다. 말년에는 뭇국의 물러진 무조차도 넘기지 못하시고 국물만 몇 수저 뜨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마음이 무척 무거워지곤 했다. 노인들이 음식을 못 먹기 시작하면 가족들과의 이별의 시간이 가까워진 거라는 말도 있는데, 나는 엄마 마지막 순간까지 집에서 함께 했으므로 그 말이 사실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엄마의 마지막 음식은 흰 죽 두어 술과 동치미 국물이었다. "건강을 회복하시려면 억지로라도 식사를 하셔야 해요"라고 나는 안타깝게 말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말은 엄마에게 참 모진 말이자 부질없는 말이었다. 의지가 강했던 엄마가 오죽하면 수저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겠는가. 수저를 든다고 한들 몸에서 받지 않으니 먹을 수가 없고, 억지로 먹으려 하면 구토가 나오고 식은땀이 줄줄 나니 엄마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 누나가 끓이는 뭇국의 구수한 냄새가 온 집 안에 가득하니, 문득 생전 엄마가 뭇국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생각났다. 엄마를 생각하며 나도 오랜만에 소고기 뭇국을 맛있게 먹었다. 그나저나 참 희한한다. 식성도 유전되는 것인가, 누나도 속 아플 때 흰 죽보다 소고기 뭇국을 찾게 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뭇국을 함께 먹으며 누나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충남 공주의 넉넉한 집안에서 그야말로 공주처럼 자란 엄마는 아버지에게 시집온 후 시댁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특히 가난한 집조차 모처럼 고깃국과 전 부치는 냄새로 가득해지는 명절에도 엄마는 시어머니와 남편, 시동생과 손아래 동서, 아들과 딸들의 설빔까지 손수 바느질해서 입히느라 정신없었고, 심지어 명절 제사 음식을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다고 한다.  그러니 그 와중에 자신 몫의 음식을 제대로 챙길 겨를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크리스천이라 제사를 지내지 않고 예배를 보기 때문에 명절이나 기일에도 따로 제사 음식을 만들지는 않지만, 앞으로 엄마 기일이나 명절에는 꼭 나 혼자라도 엄마 생각하며 소고기 뭇국을 끓여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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