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누나들과 고스톱 (11-15-금, 흐림) 본문
누나들이 함께 저녁 먹자며 소고기 국거리를 사 들고 집에 왔다. 가지도 무치고 무채 볶음도 하고 소고기미역국을 끓여서 함께 저녁 먹었다. 공교롭게도 누나들도 나도 혼자 살다 보니 이렇게 자주 모인다. 물론 전부터 자주 만났던 거 아니다. 그전에는 할머니(누나들)들과 식사하는 게 싫고 귀찮아서 같이 밥 먹자고 해도 내가 싫다고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난 7월, 큰 매형이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는 자주 만나서 함께 식사하고 차도 마시고 있다.
물론 요즘처럼 자주 만나는 일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혼자 뭔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만나자는 연락이 오거나 오늘처럼 불쑥 밥 먹자고 찾아오면 솔직히 귀찮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들과 함께 식사하며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다 보면 귀찮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형제라는 끈끈한 연대감이 생기곤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내 쪽에서 일부러 연락해서 누나들을 우리 집에 오라고 할 때도 있다.
오늘은 식사하고 쉬다가 내 방에 들어와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작은누나가 방문을 두드리며 “동생, 자?” 하고 물었다. 내가 문을 열고 “아니요? 왜요?” 했더니 “심심한데 언니가 고스톱이나 치자는데?” 하며 웃었다. 속으로는 ‘뜬금없이 웬 고스톱’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좋아요” 대답하고는 검은 바둑돌 상자를 들고 누나들 방으로 갔다. 작은누나는 화투를 깔아놓고 짝을 맞춰보고 있었고, 큰누나는 소녀처럼 들떠있었다.
그렇게 3남매는 오랜만에 고스톱을 치며 추억 여행을 떠났다. 함께했다. 큰누나는 “동생아, 나는 이런 시간이 너무 좋아. 말할 수 있는 형제들이 근처에 있는 게 너무도 다행이고. 앞으로도 가끔 이렇게 만나서 수다도 떨고 밥도 먹고 그러자. 길어야 10년 아니겠니?” 했다. 그 말은 맞다. 정말 길어야 10년 이렇게 떠들고 놀 수 있을 것이다. 10년 후면 큰누나는 80대고 나는 70대다. 놀고 싶어도 근력이 부족해 놀 수도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괜스레 서글퍼지기도 하고 조급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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