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평범해서 고마운 하루 (3-15-금, 맑음) 본문
아침 일찍 병원에 들러 어제 수술받은 부위의 드레싱을 새로 하고 항생제 주사를 맞았다. 다행히 하루 만에 증상은 눈에 띄게 완화되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남자 닥터였는데, 그는 내일(토요일)도 진료하니 병원에 들르라고 했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오늘 같은 수준의 처치(處置)라면 나 혼자 해도 될 것 같아서 집 근처쯤 왔을 때, 약국에 들러 드레싱 도구들과 항생제 성분이 들어있는 후시딘 연고를 구매했다. 저녁에는 병원에서 드레싱 해준 붕대를 풀고 내가 소독하고 약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병원에서와는 다르게 슬림하게 했기 때문에 타이핑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살 것 같았다. 증상이 발현한 후 요 며칠, 손가락 통증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답답했던 건 타이핑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질병을 앓고 있다면, 육체적 통점(痛點)은 사람들이 비슷하겠지만 정서적 통점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다. 나에게는 글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이 크나큰 고통이다.
오후에는 훈, 밤중에는 준이 각각 전화했다. 훈은 오늘까지 갚겠다며 꾸어 간 돈에 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따로 묻지 않았다. 애초에 받을 생각 없이 꾸어준 돈이다. 술 마시고 싶어서 전화한 것 같았지만, 내가 손가락 수술 이야기를 하자 "고생했어요. 다음 주에나 봐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준은 수다쟁이답게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의 이야기는 두서가 없어서 시 이야기에서 연애 이야기, 나중에는 주변 사람 이야기까지 소재도 다양하다. 적당한 시점에 대화를 끊어주지 않으면 밤을 새워서 이야기를 이어갈 친구다. 준은 전화를 끊고 나서도 두 번 더 전화했는데, 두 번째 전화는 받았지만, 10시 이후에 온 세 번째 전화는 받지 않았다. 두 번째 전화했을 때 그는 혼자서 술 마시며, 마움에 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람'은 일산에 사는 나의 대학 후배 J다. 준과 J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무척 낮아 보이는데도 그는 수년 전부터 J를 마음에 두고 있다. 둘 다 처녀 총각이니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아마도 세 번째 전화는 취한 상태로 했을 것이다. 전화를 안 받은 이유다.
여기저기 사랑 이야기가 화두인 걸 보니, 봄이 오긴 왔나 보다. 올봄에는 처처에서 힘겹게 연심을 키워가는 모든 이의 사랑이 아름답게 꽃피길 진심으로 기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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