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뜻밖의 만남 (04-24-월, 맑음) 본문
퇴근 후 H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도 퇴근해 막 시청 근처를 지나고 있다고 했다.
“선배님, 잘 지내고 계시죠? 저 퇴근해서 지금 시청 근처를 지나요. 선배님은 퇴근하셨나요?”
“응, 지금 막 집에 왔어. 너도 잘 지내지? 요즘 센터 무척 바쁜 것 같던데.”
“예, 조금 바빴어요. 아니 여전히 일이 많네요.(웃음) 어, 근데 왜 목소리가 잠기셨어요?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 늘 저녁 무렵에는 이렇게 잠겨. 그러다 말하면 풀리고. 청에서는 대개 혼자 사무실에 있다 보니 말할 일이 별로 없잖아.”
그녀는 웃었다. 나도 웃었다.
“언제 한가해지면 밥 먹자.”
“선배님, 저 오늘 시간 괜찮은데요.”
“그래? 그럼 오늘 볼까? 그러지 뭐. 그럼 어디서 볼까?”
“식사하면서 술도 한잔하실 거죠? 그럼 제가 아예 차를 두고 나올게요. 지금 정장 입어서 불편하기도 하고...”
“그럼 7시 30분, 예술회관역 6번 출구 맞은편에서 보자.”
“네, 알겠어요.”
퇴근 후 벗어놓았던 옷들을 다시 챙겨 입은 후 유튜브를 보다가 7시쯤 집을 나섰다. 시청역에서 환승을 위해 열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도착했다는 H의 전화가 걸려 왔다.
“나도 다 왔어. 3분 후에 열차 도착. 5분만 기다려.”
예술회관역 6번 출구를 나왔을 때 막 교차로 보행신호가 켜졌다. 길 건너편에서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추운 줄 몰랐는데, 저녁 되니까 서늘하네요. 너무 가볍게 입고 나왔나 봐요.”
얇아 보이는 니트에 앙증맞은 패딩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양팔을 교차하고 팔뚝을 비벼댔다.
“그래도 니트라서 좀 걸으면 괜찮아질 거야. 그나저나 어디로 갈까?”
“함께 걷다가 마음이 당기는 곳이 있으면 들어가기로 해요.”
H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H는 웃는 모습이 무척 예쁘다. H가 웃을 때마다 '나도 저렇게 웃을 때마다 환해지는 얼굴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로데오 쪽으로 걸어갔다. 술집과 거리는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일명 삐끼들이 나타나 우리에게 호객하기도 했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결국 들어간 곳은 둘이서 서너 차례 들렀던 ‘종로빈대떡’이었다.
‘술집이나 식당의 데이터베이스를 업그레이드해야겠군’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 이른 시간도 아니었는데 식당에는 손님이 우리뿐이었다. 호젓하긴 했지만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주방까지 다 들릴 정도로 조용해 약간 부담스러기도 했다. 모둠전을 시키고 호랑이 막걸리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주로 들었다. 소녀처럼 달뜬 표정으로 얼마 전 책읽기 모임에서 목포로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도 해주었다. 30분쯤 지나서, 연극제 참가차 미국에 갔다가 어제 귀국한 후배 재상이와도 연락이 되어 그도 합석했다. 입담 센 그의 미국 방문기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웃다가 진지해졌다가 다시 웃기를 반복했다.
즉흥적인 걸 좋아하는 H의 성정에 딱 맞는 형식의 오늘 같은 만남, 이를테면 번개모임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11시 30분쯤, 식당을 나왔다. 재상이를 먼저 택시 태워 보내고 H와 나는 예술회관까지 걸어와 전철을 탔다. 인천터미널역에서 타도 됐지만, 함께 걷고 싶었다. 느릿느릿 걸어와 검표대 앞에서 포옹하고 헤어졌다. H는 송도 방향, 나는 시청 방향! 집에 도착했을 때, H의 문자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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