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04-26-수, 맑음) 본문
장미의 꽃말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빨간색이 환기하는 분위기와 느낌, 장미꽃의 이미지가 맘에 들어서 나는 빨간 장미를 내 동료인 비서실장에게 주고 싶다. 뇌경색으로 입원했던 비서실장이 오늘 퇴원했다. 보운 형과 둘이서 병원에 들러 그의 퇴원을 축하했다. 그리고 병원 앞 식당 경복궁에 들러 삼계탕을 함께 먹었다. 뭔가 결연해진 표정이었다. 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고 "마지막으로 한 대 피우고 던져 버릴 거예요." 하길래, 옆에 있던 나는 "핑 돌 텐데..... 그나저나 왜 던져버려요. 그냥 나 줘요." 했더니, "문 동지 담배 끊었잖아요?" 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피우려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 주려고요. 버리는 거보다 낫잖아요." 했더니, "아하!" 하며 그는 내게 담배를 건네주었다.❚그는 입원해 있는 동안 자신의 거취와 이후의 삶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아내에게도 이미 비서실장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무척 놀라웠지만, 곧바로 이해가 되었다. 그의 아내는 오래전부터 그에게 실장 일을 그만두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동렬 형과 한 장학관을 만났다. 평소에 비서실장과 친하게 지내던 한 장관학은 "이제 나오는 거예요?" 하며 울기 일보직전의 표정으로 안부를 물었다. 한 장학관은 식사하는 내내 건너편 테이블에서 우리 쪽만 바라봤다.❚일행과 막 헤어지려 할 때 시민대학 강의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가던 후배 Lee를 만났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아, 선배님 반가워요." 하며 나를 덥석 안았다.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약간 탄 얼굴이었다. 건강해 보였다. 일행 때문에 경황이 없어 "어, 그래. 반가워." 대충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가 비서실장과 보운 형이 택시 타고 떠난 후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차근차근 안부를 물었다. "5월 초에 꼭, 반드시 연락할게요" 하는 그녀에게 "바쁜데 뭘. 연락에 강박 갖지 마. 물 흐르듯 해"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다면 하는 그녀이므로 5월 초에는 분명 연락할 것이다. 그녀도 나에게 물을 게 많고 나 역시 그녀에게 물어볼 게 많다.❚
오후 3시쯤 후배 장이 전화해 영양가 없는 질문을 이것저것 던지며 대화를 질질 끌었다. 그가 그럴 때는 술 마시고 싶다는 거다. 그의 이야기는 내 쪽에서 견디지 못하고 "야, 자세한 이야기는 술 한잔하면서 하자"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오늘도 예외없이! 결국 퇴근 후, 그가 유튜브에서 봤다는 술집(신기촌 '산고을')에서 5시에 만났다. 안주 하나를 시키면 서너 개의 보너스 안주가 나오는데, 이게 다 단품으로 팔아도 될 만큼 푸짐하다는 곳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배불러서 남겨야 할 지경이었다. 맛은 그냥 그랬다. 맛을 중시하는 어른들이 자주 갈 곳은 아니었다. 술값은 그리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다시 갈 것 같지는 않다.❚ 7시쯤 혁재와 선아가 합석했다. 용현동에서 점심 때부터 술 마셨다고 한다. 둘 다 취해있었다. 혁재는 그렇다치더라도 건강이 별로 안 좋은 선아가 그렇듯 낮술 마시고 다니는 게 무척 걱정되어 쓴소리를 했다. 그녀는 내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긍해 주어 다행이었다.❚ 주점 '산고을'을 나와 술 취한 선아를 택시 태워 보내고, 근처 '이쁜네'로 자리를 옮겼다. 훨씬 편하고 좋았다. 그곳에서는 오히려 '산고을'에서 마신 소주가 말끔히 깼다. 이쁜네에서는 막걸리를 마셨다. 술 취한 혁재의 쉴 새 없는 너스레를 들어주다가 11시쯤 술집을 나왔다. 택시타고 집에 오니 11시 30분, 몸도 정신도 말짱하다. 혁재는 오늘 얼추 12시간 동안 술 마셨다. 미친놈! 아니 탁월한 놈인가? 모르겠다. 이래저래 지출이 많았던 날이다.❚
古來聖賢皆寂寞 예로부터 성현들은 다 흔적 없어도
惟有飮者留其名 오직 술고래만은 이름을 남겼다네.❚이백, ‘장진주(將進酒)’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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