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후배들과 주안역 '미미' 그리고 '쥐똥나무'를 찾다 본문
제고 후배 재상, 상훈, 하동이 연락을 해서 오랜만에 주안에서 회동했다. 약속 장소는 주안, 집 앞에서 전철 타면 환승 없이 다섯 정거장 거리다. 재상이가 보내준 지도를 보며 약속 장소 '미미'를 찾아갔더니 그곳은 아담한 일본식 횟집이었다. 후배들은 모둠회에 차가운 사케를 마시고 있었는데, 얼핏 봐도 손님들은 대개가 젊은이들이었다. 주안역 먹자골목은 확실히 내가 늘 가는 곳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젊은이들로 가득 찬 술집에 얼추 60이 다 된 후배들과 앉아 있으려니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 정작 그들은 전혀 우리를 의식하지 않는데도 이쪽에서 지레 신경이 쓰이는 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즐거웠던 이야기, 서운한 이야기, 화났던 이야기, 고소했던 이야기, 황당했던 이야기, 우스웠던 이야기를 원 없이 나눴다. 불행한 누군가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그에 관한 화제는 오래 이어지진 않았다. 이제 우리는 남 이야기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게 훨씬 정신 건강에 좋다는 걸 감각으로 알게 되었다. 물론 우리 이야기가 다 밝고 환했던 건 아니다. 치매로 고생하던 모친이 결국 길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다는 이야기, 모친의 시력에 이상이 있어, 때가 되면 약을 챙겨 주기 위해 반드시 10시쯤에는 귀가해야 한다는 이야기, 자폐를 앓고 있는 장성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심한 적대감을 보여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헤어져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 하나 같이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였지만, 우리 나이에는 항용 있을 수 있는 상황이기에 우리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후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울 엄마가 얼마나 고마운 사람이었고, 그분의 기도가 왜 그리 간절했는지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엄마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모두 잠시 침묵했다.
그곳을 나와서 들른 곳은 음악 카페 '쥐똥나무', 지하에 있는 그곳은 음악도 듣고 노래도 부르고 공연도 열리는 다목적 문화공간이었다. 시설은 허름하고 지하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분위기는 괜찮았다. 앞서 도착한 손님들이 노래를 시작했고, 자연스레 상훈이와 재상이가 노래를 불렀다. 상훈이의 선곡은 내 취향이었고 노래 솜씨는 보통, 재상이는 선곡도 솜씨도 맘에 들었다. 특히 노래 솜씨는 웬만한 가수보다 나았다. 그가 가끔 연주회나 토크 콘서트를 연다고 할 때 ‘가수도 아닌 친구가 무슨 연주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오늘 그의 노래를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나를 위해 배호의 ‘누가 울어’를 불러주기도 했다. 창길이와 또 다른 후배들이 갈매기에 있다며 연락해 왔지만, 갈 수가 없었다. 10시쯤 재상이가 먼저 가고, 나머지 세 명은 맥주를 몇 병 더 마신 후 11시쯤 카페를 나왔다. 상훈이는 마을버스를, 그리고 하동이는 택시를, 나는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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