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6월 12일, 발병 5일차, 일요일, 맑음 본문
오늘 오전에는 멀리 3지구 약국까지 걸어가 안대를 사 왔다. 눈 시림이 여전하고 눈물이 나와 한쪽 눈을 안대로 가려볼 생각에서였다. 휴일이라 우리 동네 약국은 모두 문을 닫았지만, 만수 3지구의 성심의원과 바로 옆에 있는 약국은 옛날부터 365일 문을 여는 의원이고 약국이어서 그 전부터 (휴일에 아프거나 약을 살 일이 있을 때면) 종종 들렸던 곳이다. 엄마 생존해 계실 때도 급하게 약이 필요하거나 진료를 받아야 할 때는 그곳을 이용하곤 했다. 돌아올 때는 남동구청 앞 공원을 거쳐 문일여고 후문 쪽 길을 택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빠져나오는 사람들과 휴일 식당을 찾는 사람들로 거리는 붐볐다. 그들의 환한 표정과 내 초라한 몰골이 대조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코로나 시국이라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집에 돌아와 사 온 안대를 착용해 봤더니 생각보다 너무 불편했다. 차라리 나오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시릴 때는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 눈으로 세상과 사물을 보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서 (느낌일 뿐일지 모르겠지만) 얼굴 근육이 어제보다는 부드러워진 듯했다. 내일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나면 더욱 증상이 완화될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 더 나빠질 일이야 뭐가 더 있겠는가 하는, 밑바닥을 찍어 본 사람들이 항용 갖게 되는 호승심일 것이다.
오후에는 자주 인터넷 영상을 보면서 이마부터 입술까지 순차적으로 마사지를 했다. 졸음이 왔지만 낮잠은 자지 않았다. 밤에 잠을 설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일 병원에 가면 지난 주 금요일에 채혈한 피검사 결과를 알려줄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처방 약의 강도, 이를테면 스테로이드제의 양을 조절할 예정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만약 당뇨 증상이 나타나면 스테로이드제 사용을 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스테로이드가 당을 급격하게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당뇨 소견이 없다면 지난주처럼 처방이 이루어질 것이다.
내일부터 시작될 한 주가 증상 변화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지금의 증상은 감기처럼 왔다가는 증상일 뿐이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증상이기도 하고. 힘을 내자. 이 정도 고통도 참아내지 못한다면 도대체 내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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