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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발병 8일차 수요일, 비 내림 본문

일상

발병 8일차 수요일, 비 내림

달빛사랑 2022. 6. 15. 00:45

 

새벽에 빗소리에 잠이 깼다. 이렇게 빗소리에 잠이 깨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가문 날의 빗소리 만큼 반가운 소리가 있을까. 나 역시 갑자기 만난 황망하고 낯선 상황에 몸도 맘도 무척이나 가문 상태였기에 내리는 비가 그 어느 대보다 무척 반가웠다. 대개는 아침을 건너뛰곤 했는데, 발병 이후에는 약을 먹어야 해서 간단하게라도 아침을 만들거나 챙겨 먹는다. 오늘은 계란 김국을 끓여먹었다. 끓이기가 간단하고 나름 영양가도 담보할 수 있어서 바쁠 때는 자주 끓여 먹는다. 아침운동은 가지 않았다. 퇴근 후 한갓지게 운동하고 싶어서다. 다른 때 같았으면 비 오는 수요일, 술자리에 앉아 있었겠지만, 요즘에는 정시에 퇴근하기 때문에 저녁 시간이 전보다 많아졌다. 

점심시간 즈음해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와 신경과에 들렀다. 담당의사는 이곳저곳 찬찬히 내 얼굴을 뜯어보다 "더는 악화되지 않을 거 같네요. 이제 약도 비타민이나 신경재생에 좋은 약으로 단촐하게 처방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기분이 환해졌다. 중학교 동창인 의사는 정작 내 얼굴 상태나 증상의 진행과정에 관한 얘기보다 나에 관한 궁금증을 더 많이 풀어놓았다. '몇 반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등등 우연하게 만난 동창으로서 궁금한 게 많았던 모양이다.  이런 종류의 만남은 매번 어색하다. 하지만 귀찮아하지 않고 친절하게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교육청 보좌관은 부업이고 본업은 예술가, 그중에서도 시인입니다"라고 했을 때, 의사 친구는 약간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 표정에서 나는 확실히 그의 호의를 읽을 수 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원장실을 나올 때, 친구는 처음보다 훨씬 반갑게 풀어진 얼굴로 "다음에 봐요"라고 웃으며 인사했다. 오늘은 진료비 3,000원, 약값이 2,700원, 지난 주의 2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을 지출했다. "처음에는 급한 상황이라 비싼 약을 다량으로 처방했기 때문에 많이 나왔던 거고, 오늘부터는 영양제나 비타민 류의 약이기  때문에 약값이 얼마 나오지 않을 겁니다"라는 의사의 말대로였다. 일단 기분은 좋았다. 병이 그만큼 순해진 게 아니겠는가? 

12시쯤 청사로 들어오며 참치김밥 2줄과 컵라면 한 통을 샀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식당에서 혼자 밥 먹기 싫어서였다. 4천 원에 한 줄인 참치김밥은 별로 맛이 없었다. 김밥과 라면 값이 9천 원이 넘는데, 이럴 바엔 식당에 가서 뜨끈한 설렁탕이나 순댓국밥을 먹는 게 훨씬 나을 뻔했다. 가끔은 계산하지 않고 넘어가 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은 때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경우다. 아침 출근할 때부터 내린 비는 병원을 다녀올 때까지 계속 내렸다. 주룩주룩 내리는 장대비는 아니고 보슬보슬 내리는 보슬비였다. 


벨마비 증후군 발병 8일째, 이제 물을 마셔도 입 주변으로 물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눈물은 여전히 흘러나오고 눈 주위가 뻑뻑하긴 하지만, 처음 발병했을 때보다는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아직 휘파람을 불지는 못한다. 물을 마시거나 말을 할 때면 왼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전체적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보인다. 텀블러의 빨대를 사용할 때도 입술 전체에 힘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띄게 상태가 호전됐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나의 노력과 흐르는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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