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빨래하고 청소하고.... 본문
아침에 일어나 날씨를 확인하고 겨우내 덮었던 이불과 침대보, 베갯잇을 세탁했다. 오전에는 체감 온도가 영하였으나 볕이 좋고 바람이 불어 빨래 말리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옷방을 청소했다.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겨울이라 문을 꽁꽁 닫아놓는데 도대체 어디로 이렇듯 먼지가 들어와 쌓이는 건지 청소를 할 때마다 의문이 든다. 내가 밖에서 묻혀 들어오는 건지, 환기를 위해 잠깐 열어 놓는 동안 점령군처럼 들어찬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옷을 갈아입을 때 빼고는 옷방에 들어올 일이 별로 없는데, 빨래 건조대 밑에도 머리카락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넌 또 어디서 온 거니?’ 청소하다 보면 이 집에 나 혼자 사는 게 아닌 듯한 느낌이 자주 든다.
옷방을 청소한 후 탈수된 빨래를 테라스에 널어놓고 아침을 먹고 있을 때, 알게 된 지는 오래되었으나 평소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아 온 사이가 아닌 한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지막으로 본 게 수년은 된 듯싶었다. 그는 전화로 “형님,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하며 부친의 부고를 알렸다. 나는 “마음이 아프겠지만, 힘내! 나도 작년 이맘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아무튼 이렇게 알려줘서 고마워. 내가 식사 중이니 부고를 문자로 다시 보내주고 계좌번호도 알려줘.”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식사하는 내내 묘한 생각이 들었다. 연락 없던 지인이나 동창들이 갑자기 연락하면 열에 아홉은 경조사가 있는 경우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였을까, 조금 전 전화할 때, 나는 굳이 작년 1월의 내 어머니 소천 소식을 그에게 말했는데, 그 이유는 유치하게도 ‘내 어머니의 부고는 알만한 사람들에게 전부 전해졌을 텐데, 너는 그때 아무 연락도 없었잖아.’라는 꽁한 힐난의 의도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예상대로 그는 “아, 그러셨어요? 가보지도 못했네요. 죄송해요”라며 무척 당황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의도가 성공한 셈이다.
전화를 끊고 후배에게 조의금을 이체한 후,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내 유치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큰일을 치러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경조사와 관련해서는 ‘Case by case’로 반응하게 된다는 것을. 그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로부터 아무것도 받은 바 없는데도 내게 큰 사랑을 나눠준 분들이 무척 많다. 나도 그렇듯 일방적인 사랑을 받았으면서 연락 없던 후배의 전화에 대해서는 꽁한 마음이 되다니, 얼마나 유치한가. 게다가 그는 후배였고, 아버지의 부고를 전한 것이다. 무조건 먼저 위로를 전하고,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어야 옳다. 형식은 그랬지만, 속내는 그렇지 못했으니 더욱 치사하고 유치한 것이다. 그가 직접 전화하지 않고 문자로만 부고를 보냈다면 나는 분명 위로는커녕 조의금조차 보내지 않았을 게 틀림없다. 세상을 이렇듯 팍팍하게 살아가서는 안 될 일이다.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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