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혁재는 진안으로 떠나고 본문
춥지 않은 날씨다. 오늘은 비서실에서 넘어오는 원고 요청도 별로 없고, 같은 방 보좌관은 출장이라서 빈 사무실에서 고즈넉이 오후를 보낸다. 조금 전 혁재는 전화를 걸어 양평에서 일하던 영택이와 대전에서 만나 함께 진안으로 내려가는 중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 초겨울 산촌의 정서를 흠뻑 느끼고 돌아오라고 말해주었다. 혁재는 이미 들떠 있었다. 오죽하겠는가. 물과 바람처럼 살아가는 혁재로서는 도시의 삶이 무척이나 답답했을 것이다. 사람 좋은 희순이는 주모처럼 웃으며 혁재를 맞아주겠지. 가까운 곳이라면 나도 밤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교통편이 마땅찮아 갈 수가 없다. 부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살아 우리가 만나 이렇듯 격의 없이 술잔을 나눌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진안의 어느 산촌의 겨울은 그들이 있어서 조금은 더 따뜻해질 것이다. 즉흥적인 내가 당장 내일 차표를 끊는 일이 없길 바란다. 짧은 인생, 하고 싶으면 당장 하는 게 멋진 일이겠지만, 대책 없이 벌인 일의 뒷감당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
비서실 주무관이 텀블러와 간식거리를 가져다주었다. 텀블러는 도림고 신축 이전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품이다. 덩치도 크고 보온과 보랭도 잘 될 듯. 나이 든 보좌관들이라 과자도 크림이 있거나 초콜릿이 묻은 빵들만 일부러 골라서 준다. 주무관과 눈이 마주치면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웃으며 과자를 베어 물다 문득 엄마를 생각한다. 왜 갑자기 엄마가 생각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달콤한 과자를 먹을 때마다 엄마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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