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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자발적 고립에 대하여 본문

일상

자발적 고립에 대하여

달빛사랑 2021. 10. 24. 00:10

 

가끔 나는 나를 모든 것으로부터 자발적으로 고립시킨다. 혼자 지는 게 외롭거나 싫지 않다. 번잡한 게 오히려 귀찮고 싫다. 그래서 자주 집에 있을 때는 휴대전화를 꺼놓곤 한다. 컴퓨터는 열어놓으니 카카오톡을 통해 급한 소통은 할 수 있다. 식량과 책과 인터넷만 있다면, 몇 개월이고 나는 혼자서 지내는 데 전혀 불편함을 못 느낄 것이다. 어릴 때(2~30대)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술 마시는 걸 좋아했다. 심지어는 집에까지 데려와 함께 술을 마셨다. 혼자 있는 게 정말 싫었고,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라야만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아내와 헤어지고 엄마와 단둘이서 살다 보니, 누군가를 집으로 데려오는 일은 잦아들었다. 보증 사건으로 힘든 일이 터지고 나서부터는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싫어졌다.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많이 괴로워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 보이는 것도 싫었다. 그냥 익명으로 살게 되기를 소망했다. 스스로 모든 것을 고립시키는 버릇이 생긴 것도 그때쯤이다. 다시 세상에 나와 사람들을 만난 건 40대 후반쯤이었다. 그리고 문화예술 단체에서 활동도 하고,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때쯤 갈매기도 알게 되었고 혁재도 알게 되었다. 조구 형을 알게 된 것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러다 나는 교육청에 들어왔고, 곧바로 대재앙의 시간이 찾아왔다. 한동안 업무 때문에 많은 사람을 만나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전무후무한 재앙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다시 혼자 술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앞서도 말했듯이 코로나가 아니라도 바글거리며 술 마시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딱 둘이서 마시는 술, 많으면 셋까지가 좋다. 코로나 이전에도 단골 술집 갈매기에 가면 나의 가수 혁재와 단둘이서 마시거나 좋아하는 조구 형까지 셋이면 충분했다. 그나마 셋이서 모두 만날 수 있는 날이 드물어 결국 나는 혼자 마시거나 조구 형이나 혁재와 둘이서 마셨다. 운 좋게 셋이서 만나는 날이면 다른 날보다 과음하게 되는 것은 그(반가움) 때문이었다. 나와 조구 형은 늘 가는 날이 일정해서 갈매기 출몰 시점이 예측 가능했지만, 오라는 데도 많고 갈 데도 많은 혁재는 언제 나타날지 특정할 수 없었다. 그나마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진 이후로 혁재는 더욱 갈매기에 나타나지 않았고, 조구 형과 나는 가는 날이 달라서 만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혼자서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가끔 아는 후배들이 나타나 합석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나는 불편하다. 계산을 해줘야 하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혼자 고즈넉이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을 방해받기 때문이다. 막걸리를 마시며 점점 올라오는 술기운을 다스리며 감상에 젖는 일을 나는 좋아한다. 조구 형처럼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줄곧 자기 이야기만 해대는 후배와의 술자리는 피곤함 그 자체다. 또 혼자라서 쓸쓸함을 느낀 적도 별로 없지만, 설사 느낀다 해도 나는 그런 싸구려 감상이 싫지 않다. 쓸쓸함과 고독은 나의 힘, 오늘도 나는 나 스스로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된 채 홀로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다. 좋다. 늙은 히키코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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