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장 보고 청소하고 영화 보고 본문
날이 너무 좋아서 아침부터 괜스레 부산했다. 주말이라고 특별할 일도 없지만, 이렇듯 날이 좋은 주말에는 뭔가를 해야만 날씨를 예우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집 안 구석구석 청소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날이 서늘해져 거실에 전기장판을 깔았다. 먹다 남은 반찬도 정리하고 포기김치를 꺼내 먹기 좋게 썰어놓았다. 그리고 장을 보기 위해 마트를 다녀왔다. 만두, 순두부(양념 포함), 두부 5모, 오이, 애호박, 국수, 칼국수, 식빵, 어묵, 풋고추, 떡국 떡 등을 샀고, 마트 옆 재래시장에 들러 깻잎무침, 호박 무침, 도토리묵 등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는 안경점에 들러 기능성 돋보기안경의 늘어진 다리도 손보고 왔다.
오늘도 마트에서 장 보고 돌아올 때는 집 앞 단골 슈퍼 주인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칠까 봐 뒷길로 돌아서 와야 했다. 내 돈 내고 장을 봐 오는 것이지만, 동네 인심이란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몇 푼 아끼려고 마트에 다녀오는 게 왠지 모르게 매번 죄짓는 기분이다. 사실 물건값을 아끼려는 것보다 품목이 많아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이지만, 이것을 아주머니에게 매번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웃과 웃는 낯으로 더불어 살려면 많은 것을 배려해야 하고 서너 가지의 귀찮음도 감수해야만 한다. 이러한 데에는 물론 내 성격도 한몫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복권도 한 장 샀다. 머리도 깎을까 생각했는데, 아직은 길지 않아 다음 주에 깎기로 했다. 집에 도착해도 오전이 다 가지 않아, 화초들에 물을 줬다. 엄마가 기르던 화초들은 꽃을 피우기도 하고 파란 잎을 뽐내며 잘 자라고 있다. 다행이다. 날이 더 추워지면 모두 안으로 들여놔야 할 것이다.
이우재 선배 막내아들 결혼식에는 축의금만 보내고 참석하지 않았다. 건환 형 전시에나 들러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후배 H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마침 그녀는 건환 형 전시를 보고 나오는 중이라고 했다. 지난봄부터 밥 한번 먹자고 전화하더니 벌써 가을이다. 그녀도 그게 마음에 걸렸던지 11월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식사하자고 했다. 하지만 별로 믿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언제 같이 식사해요”라는 말은 ‘언어의 친교적 기능’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걸 안다. 우리는 겨울이 지나도록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나치다 우연히 만날 수는 있겠지만. 그걸 서운해할 만큼 순진하지도 않고 불쾌하지도 않다. 그래도 밥을 같이 먹자는 친교의 메시지를 받았으니, 요즘처럼 하찮은 이유로 적대하는 풍조가 일반화된 현실에서는 고마운 일 아닌가.
오후에는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듄’을 관람했는데, 감탄이 절로 나는 영화였다. 3시간가량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대작의 1부에 해당하는 영화라서 앞으로 서너 편의 뒷이야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영화의 세계관이 너무 방대하고 재밌어서 원작 소설을 구매했다. 그런데 책값이 무려 108.000원,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얼마 전 심사비가 입금되어 과감하게 구매했다. 그래도 한 권에 3~4만 원 하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시리즈보다는 인간적이다. 이번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듄(Done)’의 세계관을 훑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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