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엷은 안개 낀 일요일, 온통 엄마 생각 본문
옅은 안개가 끼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은 2주 전에 얼려놓은 김치찌개를 녹여 먹었다. 요즘은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만들거나 상을 차릴 때마다 엄마 생각이 자꾸 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감옥에 갇힌 수인처럼 외로움을 홀로 견뎌냈을 엄마의 시간이 떠올라 마음이 자주 먹먹해진다. 혼자 엄마 방 열린 문 앞에서 “엄마!”하고 엄마를 불러보기도 한다. 그때 엄마 이야기를 자주 들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술 마시고 들어간 날, 엄마와 식탁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또 한잔 걸치셨군.” 하시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으시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 내가 “엄마,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그럼, 나 이제 걱정 하나도 없어. 효자 아들이 잘해주고, 손자도 잘 풀려 제 앞가림하는데, 뭐가 걱정이냐.” 하며 틀니를 빼 옴폭 들어간 입을 가리며 호호호 웃으시던 엄마가 생각난다.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시려고 하얀 꽃가마를 내려주시더라.”라며 꿈 이야기를 하실 때도 환하게 웃으셨다. 그분의 기도 제목은 언제나 나와 수현이의 건강과 안위였다. 또 자식에게 민폐가 되지 않으려는 엄마의 노력은 숭고한 죽음의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주무시다 하늘에 드신 엄마의 모습은 애잔하면서도 숭고했다. 그것은 당연히 엄마의 기도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증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숭고한 소천은 자식인 나에게도 선물 아닌 선물이었다.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애잔하면서도 다행인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일요일마다 엄마는 화장하고 옷을 챙겨 입은 후 “너는 걸음이 빠르니 내가 먼저 가고 있으마.” 하시고 늘 나보다 먼저 집을 나서서 교회로 향하셨다. 나도 준비를 하고 뒤따라 나서면 엄마는 이미 교회 근처까지 가 있곤 하셨다. 함께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보폭마저도 엄마는 배려하실 정도로 자식에게 부담이 되길 싫어하셨다. 돌아오는 길에는 가끔 엄마의 손을 잡아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소녀처럼 환하게 웃으시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예배를 볼 때, 나는 대개 딴생각을 하거나 낙서를 하곤 했다. 신앙심 때문에 교회를 찾은 게 아니라 엄마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교회를 찾은 거다. 하나님께는 미안하지만, 그것이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드렸다면 나로서는 다행한 일이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린 재작년 하반기부터 엄마는 거의 교회에 가지 못하셨다. 늘 빈집에서 홀로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엄마로서는 일요일 교회 나가 예배보는 일이 거의 유일한 낙이셨을 텐데……. 그때 이후로 엄마의 생활은 더욱 수인과 같아졌다. 철없는 아들은 외롭다는 핑계로 걸핏하면 술 마시고, 자식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오지도 않았으니……. 내가 엄마 말년에 당신을 기쁘게 해드린 것도 없지 않겠지만, 엄마 가신 후로는 잘못한 일만 온통 떠올라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특히 오늘 같은 일요일이면 오전부터 늦은 밤까지 엄마 생각이 간절하다. 오전이면 머리 감고 화장하고 옷 챙겨입으신 후 가방에 성경 챙겨 넣고 집을 나서시는 엄마의 굽은 뒷모습이 떠오르고, 11시가 넘어갈 때쯤이면 교회에서 기도하던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저녁이면 아이들 육아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혼자 거실에서 소리내어 웃으시던 엄마의 모습도 생각난다. 일요일은 종일 엄마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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