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8월의 마지막 날, 종일 비 내리다 본문
변죽만 울리다 끝나버린 여름 장마와는 달리 가을장마는 제법 장마 같네. 부모님의 묘역은 괜찮으려나. 추석 전에 한 번 가봐야 할 텐데. 쉬엄쉬엄 내려라, 비야. 가난한 삶은 위협하지 말아라. 사소한 공격에도 상처를 입는 무방비의 살림 위로 내리는 비는 눈치 없는 정치인이나 혹세무민의 종교인 같으니. 필요한 곳에만 내리고 고여 목마른 꽃들이나 피우려무나. 한여름 시청후미촉각을 건드리며 푸석한 먼지 위로 내리꽂히는 정겨운 소나기처럼, 해가 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툭툭 남은 빗물을 털어버리는 중학교 2학년생 같은 빗줄기처럼……
어젯밤 갈매기에서 만난 후배 하나가 파산 직전이라며 자신의 경제상황을 이야기할 때, 오래 전 사업하는 친구의 보증을 서줬다가 겪은,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라 감정이 북받쳤다. 그때 나는 나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지인과 친구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상황을 낙관하다 낭패를 당했고,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물론 대부분 해결했지만, 시간은 제법 걸렸다. 내 친구들은 정말 아름답고 대단한 인간들이었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알게 되었다. 아무튼 빚에 허덕인다는 후배의 하소연을 듣게 되었을 때,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런 후배가 안타깝기도 해서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후배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 식당과 술집 등 서너 개의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매번 상황이 좋지 않았다. 사업에 요령없는 후배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의 그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빚을 졌고, 그래서 신용불량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개인회생을 진행하며 매월 100만 원 가까운 채무변제금을 납입하고 있는 모양이다. 문제는 100원의 변제금이 현재 그에게는 무척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변제는커녕 더 큰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후배는 개인회생보다는 파산을 신청했어야 했다. 그렇게 조언을 했더니, 후배도 조만간 파산재판을 신청할 생각이라고 한다. 다만 지금은 신청할 돈 1백50만 원이 없어서 보류 중일 뿐. 후배는 아직 젊고, 일할 의지만 있다면 수년 안에 후배는 이 질곡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할 모멸과 자괴감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와 인내를 벼려야 할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면 더 단단해질 거라는 진부한 조언은 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실제적인 조언을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후배와 같이, 불어나는 빚덩이에 치여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그야말로 부채공화국이다. 빚으로 생계를 연명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허약한 나라다. 그 허약한 나라에서 후배와 나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여전히 장밋빛 희망을 놓지 않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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