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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종일 비, 그리고 봉원동을 생각하다 본문

일상

종일 비, 그리고 봉원동을 생각하다

달빛사랑 2021. 8. 27. 00:20

 

종일 비 내렸다. 오래전 대학 시절, 전날 술 마시고 봉원동에서 자취하던 친구 집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자취방 문 앞까지 다가와 우리를 깨우곤 하던 늦여름 비, 생각난다. 대처승이 운영하던 허름한 자취방은 현관도 없고, 화장실도 밖에 있는, 문만 열면 바로 마당이 보이는 자그마한 방이었다. 센 비가 내리면 문 앞에 벗어놓은 신발에까지 빗물이 튀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시대와의 불화를 이야기하며 자주 술을 마셨고, 가끔은 마당에 나가 이화여대 쪽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있곤 했다. 당시 그곳에는 제법 알려진 연극배우 김동수 씨도 살고 있었고, ‘봄비’로 유명한 가수 박인수 씨도 살고 있었다. 비 내리는 날이면, 오후부터 시작된 술자리에 가끔 그분들도 함께 앉아 술을 마셨다. 대선배들이었지만 격의 없이 후배들과 어울려주던 그분들을 우리는 좋아했다. 김동수 씨는 말을 잘했고, 박인수 씨는 별로 말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술자리는 밤까지 이어졌고, 나는 다시 그 방에서 잠을 자야 했다. 스스로 몸을 망가뜨리는 하루하루였지만, 미친 시대로 인해 잔뜩 날이 선 예민한 정서를 다독이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하고 있다). 그곳은 시대의 마이너들이 잠시나마 본색(本色)대로 말하고 생각할 수 있었던 정서적 도피처였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때 그곳이 잊히지 않고 여전히 그리운 건 내가 분명 그곳에서 행복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더욱 생각난다. 상재와 철영이, 그리고 우리와 친했던 가짜 의대생 동구, 뜻밖에 입을 맞춘 국문과 친구, 산꼭대기 벌집 같은 자취방에서 생활하던 모든 음주 동기들, 그립다. 모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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