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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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달빛사랑 2021. 3. 3. 13:46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지인이 어느 날 문득 연락해올 때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뭔가 찜찜하다. 내 꼬인 심성이 원인이겠지만, 속으로 ‘이번에는 또 뭘 부탁하려는 거지?’ 하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한다. 정말 순수하게 안부를 묻기 위한 전화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 순수성을 의심부터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의심병’은 그동안의 경험치가 만든 버릇이다. 오랜만에 연락을 해와 일거리를 부탁한 선후배들 때문에 귀찮아진 적이 많다. 선택 장애 환자에다 우유부단하기까지 한 내 성정에 일단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 일을 제쳐두고 부탁받은 일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빠진 적이 여러 번이다. 하지만 그 일을 해주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낄 때도 있었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쌓게 되어 보람을 느꼈던 적도 있다. 그래서 ‘다음에는 절대 섣불리 대답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다가도 상대가 나에게 뭔가를 부탁한다는 것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상대가 나를 인정한다는 것이니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 결국 다시 도움주기를 자처하게 되는 것이다. 뭐,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그렇고 아직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좋은 일이고 해서, 누구든 도움을 부탁하면 그것이 내가 치를 떨며 싫어하는 일만 아니라면 기꺼이 들어줄 생각이다. 오늘도 두 명의 후배로부터 문자와 전화로 도움을 요청받았는데, 하나는 자신의 프로젝트와 관련해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내 지근의 누군가와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둘 다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만 약간 심적 부담은 있다. 그 사람의 예술을 존경한다든가 아니면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본받고 싶어서라는, 이해관계가 전제되지 않은 만남이라면 상관없는데, 둘 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업들이긴 하지만, 추진 주체에게도 반사적 이익이 생길 수 있는 일들이다 보니 신중해지는 것이다. 다만 두 후배 모두 지금까지 지역에서 평판이 나쁘지 않고 내가 지켜본 바로도 (의욕 과잉인 측면이 있지만) 허투루 사업을 추진해 온 친구들도 아니라서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그나저나 나는 왜 부담을 느끼면서까지 상대의 부탁은 이리 잘 들어주면서도 정작 나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남에게 (꼭 필요한 부탁은 차치하고라도) 입도 뻥끗하지 못하는 걸까. 한심한 것 같기도 하고, 신세진 것 없으니 맘 편한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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