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하루 종일 많은 비 ㅣ 영화 '라스트 레터'를 보다 본문


새벽부터 내린 비가 어둠이 깃들 때까지 주룩주룩 내렸다. 오늘 내린 비만큼 눈이 왔다면 인천은 도시가 마비되었을 것이다. 연휴의 끝자락인 3.1절 기념일이 종일 내린 비로 흠뻑 젖었다. 빗속에서도 처처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뉴스에 나오는 기념식 참가자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로 분향하고 묵념했다. 수봉산 현충탑이 잠시 부산했다. 우산 아래 사람들의 표정은 비로 인해 더욱 비장해 보였다. 거실이 한낮에도 밤처럼 어두컴컴했다. 경사(傾斜)를 맞추지 않고 방수 공사를 한 테라스에는 빗물이 자주 고였다. 서너 차례 나가서 빗자루로 고인 물을 쓸어냈다. ‘빗물에 때가 모두 씻겨 그 빛이 환해질 때가 되었군.’ 하고 올려다본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어둡고 축축하고 을씨년스러워 누군가는 우울한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를 하루, 나는 오히려 맘이 편안하고 기분도 설렜다. 책상 앞에 앉거나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볼 때도 흡사 영화관에 온 것처럼 몰입감이 들었다. 국수를 삶아 먹었고 저녁에는 된장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오늘같이 비 내리는 날에 딱 어울리는 일본 영화 <Last Letter>를 보았다. 빗나간 사랑, 접수되지 않은 마음, 오랜 그리움의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확인하는 사랑, 빛바랜 시간의 적층 위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마음……. 이런 종류의 영화는 오늘 같은 날에 봐야 제격이란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대견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들은 다소 오글거리긴 하지만 기본은 한다. 오래전 개봉했던 <러브 레터>도 그렇고, <4월 이야기>도 그렇고, 모두 평단과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들이다. 마음이 강퍅해질 때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를 찾아보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물론 그의 영화에는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순간에 머뭇거리거나 겁을 먹어 결국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지 못하고 마는 답순이 답돌이들이 부지기수다. 이쪽 감수성이 아닌 관객은 속 터져 죽거나 유치하다고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올지도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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