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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소멸하는 빛을 향한 연민 혹은 의미 있는 말 걸기 본문

리뷰

소멸하는 빛을 향한 연민 혹은 의미 있는 말 걸기

달빛사랑 2020. 6. 15. 14:39

 

소멸하는 빛을 향한 연민 또는 의미 있는 말 걸기

―서은미 작가의 화문석 장인 아카이브 작업에 대하여

문계봉(시인)

 

1

소멸하는 존재가 발산하는 최후의 빛은 애잔하지만 아름답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한 존재의 생이란 하나의 우주이고 그 생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이다. 저 들판의 이름 없는 잡초와 구르는 돌멩이조차 각각의 생이 품은 기억과 상처들은 한결같이 지극하다. 따라서 소멸하는 존재들의 각각의 지극함에 눈길 주는 마음은 한 우주의 무게를 가늠해 보는 마음이자 이해하려는 것이고 기억을 하기 위한 의미 있는 말 걸기다. 자신이 품고 있는 우주의 정량을 가늠해 보면서 다른 우주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고 끝내는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연민의 말 걸기다. 그것은 눈물겨운 일이지만 마지막 빛의 찬란함을 경험하는 소중한 순간이기도 하다.

 

2

서은미 작가는 위에서 말한 바로 그 예사롭지 않은 일, 즉 소멸하는 것들이 발산하는 최후의 빛을 기록하는 데에 작가적 공력을 집요하게 투여해 온 보기 드문 작가다. 몇 년 전에 진행했던 강화 소창 장인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긴 것도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에도 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책으로 엮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간단한 소감을 써준 바 있다. 사진 분야는 문외한이라서 망설였지만, 사실 그녀가 원한 것은 사진 미학에 바탕을 둔 분석적인 글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것들의 애잔한 역사를 기록해 온, 자신의 작업에 대한 인정욕구가 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 그녀의 인정욕구 속에 담긴 고민과 작업의 의미에 공감했기 때문에 글을 써주었던 것이다.

 

3

이번 강화 화문석 장인에 대한 아카이빙(archiving) 작업 역시 몇 년 전 소창 장인의 그것과 맥을 같이 한다. 알다시피 강화의 화문석은 인삼, 소창과 더불어 강화를 대표하는 토산품이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중엽부터 시작되어 가내 수공업으로 발전한 화문석(花紋席)은 한자의 의미 그대로 꽃무늬가 수놓아진 돗자리란 뜻이다. 왕골을 재료로 하는 이 화문석은 그 제작과정이 엄청 까다롭고 복잡한데, 그 모든 수고로움을 거쳐서 완성해 낸 제품이 너무도 아름답고 정교하여 당시 고려로 이주했던 왕실과 관료들이 앞다투어 찾을 만큼 인기였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그 우수성이 인정되어 강화직물화연(花筵)조합을 창설하였고 그것을 계기로 품질개량과 판로 개척에 심혈을 기울여 강화 화문석은 전성기를 이룬다.

 

4

하지만 최근 들어 기계로 교직(交織)된 더욱 정교하면서도 화려한 카펫과 돗자리들이 화문석과는 비교할 수 없이 싼 값으로 시장에 나오면서 화문석은 이제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지문이 지워질 정도로 왕골을 심고 다듬고 쪼개어 날실과 씨줄을 만든 후 일일이 그것을 손으로 엮어 만든 화문석의 가치는 가격으로 환산하기 어렵겠지만 어차피 상품은 시장의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는 일, 화문석의 광휘는 의구(依舊)하지만, 그것은 이제 소수에 의해서만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처럼 기억될 뿐이다.1) 그리고 그러한 소수의 추억을 다수의 기억으로, 다중의 역사로 되살리기 위해 집요한 작업을 진행 중인 사람이 바로 서은미 작가다.

 

5

앞서도 말했지만 그녀는 오래전부터 사라져가는 것의 애잔한 그림자를 사진에 담는 작업에 집중해 왔다. 앞서 말한 소창 장인의 삶은 물론 숭의동 옐로우하우스(Yellow House) 여성들의 삶, 그리고 최근 작업 중인 일진전기 건물의 아카이빙, 이 책의 주인공인 화문석 장인의 삶 등 그녀의 카메라 렌즈가 겨냥하는 피사체들은 모두 머잖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갈 운명에 처한 것들이다. 그런 그녀의 한결같은 고집이 미쁘게 여겨졌기 때문에 사진을 잘 모르면서도 나는 매번 그녀의 작업에 숟가락을 얹곤 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6

물론 지식이 얕은 분야에 대한 글쓰기는 늘 부담스럽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사진과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된다. 특히 환금성(換金性)과는 거리가 먼 작업을 평생에 걸쳐 놓지 않고 견지해 온 장인들의 고집스러운 삶을 통해 예술가의 자세를 배우게 된다. 시를 쓰는 나에게도 그러한 자세는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크다. 그것은 사진 예술을 대하는 서은미 작가의 작가적 지향과도 상통(相通)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2) 장인의 고집은 예술가, 시인의 근성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나는 서은미 작가가 기왕에 고집스레 해왔던 작업―소멸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한 의미 있는 말 걸기 작업―을 계속한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응원할 생각이다. 명민한 작가와 함께 하는 여정은 내 의식의 지평을 넓히고 앎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행복한 여정일 게 분명할 테니까…….


1) 화문석 장인들은 판로가 여의치 않아 소량의 돗자리만을 상징적으로 생산하고 문화관 방문객이나 체험학습을 위해 찾아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물론 역사가 유구한 화문석의 명맥이 끊기는 것에 대해 관에서도 방관하진 않을 것이고 완초보존회와 같은 민간 차원의 노력이 한결같기 때문에 화문석은 당분간 강화의 대표 토산품으로 남아 있긴 하겠지만, 젊은 세대들이 과연 힘들고 환금성이 없는 이 일을 계속 이어가게 될지는 미지수다.

 

2) 사족 하나, 서은미 작가는 이런 나의 믿음이 청탁 상황에서 승낙을 얻어낼 수 있는 내 정서의 약한 고리(혹은 빈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인간적인 정 때문에 너무 쉽게 상대의 제안을 수락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청해 오는 서은미 작가의 부탁만은 번번이 수락해 왔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사실 그녀가 사준 칼국수와 맛있는 자몽에이드, 그리고 더치 커피를 먹고 마셨기 때문에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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