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영화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Our Little Sister, 2015) 본문

리뷰

영화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Our Little Sister, 2015)

달빛사랑 2020. 7. 8. 17:14

 

그간 많은 영화를 봤지만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만큼 '착한' 영화는 만난 적이 드물다. 어쩌면 영화 속 모든 인물이 이렇듯 한결같이 착할까. 영화의 클리셰 중 하나인 그 흔한 트러블 메이커나 짜증 유발자가 단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런데도 이런 비현실적 상황을 설정했다면 이 영화는 감독의 바람이 투영된 판타지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간 가족 간의 사랑과 갈등을 다룬 가족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온 감독이다. 이 영화 이전에 만든 ‘아무도 모른다(2005)’에서는 해체 위기에 직면한 절체절명의 어린 가족 구성원들의 비참한 현실을 그려냈고, ‘걸어도 걸어도(2008)’는 “지난 상처를 극복하는 소박한 가족 드라마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이라는 올무에 대한 낮은 탄식”을 보여줬으며,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에서는 멀리 떨어져 해체되고 서로의 삶에 개입되지 않더라도 그들이 서로를 염려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가족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적'의 형식을 빌려 역설하고 있다. 그의 수작 영화 중 하나인 ‘그렇게 아빠가 된다(2013)’는 (가족) 관계란 결정된 것이 아니고 만들어가는 것이며, 긴 시간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임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보여주었다.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2015)’ 역시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영화 계보에 속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인물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과 영화를 풀어가는 방식은 그가 이전 영화에게서 보여주었던 것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그 이전 영화에서 히로카즈 감독은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답게 영화 속 현실에 개입하지 않고 차가울 정도로 객관적으로 인물의 행적을 카메라에 담았다. 가끔 행복한 장면도 등장하지만 그건 행복을 과장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삶 속에서 만나는 평균치의 행복이자 일상일 뿐이다. 해당 인물은 또 그만큼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자주 절망적 상황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냉정하게 바라보기’가 사실은 냉정한 것이 아니라 계산된 배려라는 건 명민한 관객들은 결국 눈치채고야 만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허구다. 다큐멘터리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듯 페이크 무비와 같이 진부하고 비루하고 위악적이거나 위선적인 현실과 그 안에서 형성되는 관계의 실상을 ‘보여주기’를 통하여 그가 겨냥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현실과 인간관계를 단순화하지 말고, 끊임없이 고민해 보라는 제안이자 문제 제기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객관적인 태도를 빙자한 고발이자 문제 제기이고 다양한 측면을 보여줌으로써 사고의 확장과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에서는 이제까지 보여줬던 것과는 다소 다르게 접근한다.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나뭇가지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고 감독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은 이전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삶을 연민하면서도 늘 부조리한 현실을 직시해왔던 전작들과 비교하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것은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과 접근 방식이 말랑말랑해진 것이라기보다는 원작 만화의 분위기를 살리려다 보니 나타난, 필연적인 결과라는 생각이다. 그게 아니라면 나이가 들면서 히로카즈 감독 자신도 이제 더는 해체된 가족, 붕괴된 관계, 위선과 상처로 얼룩진 가족을 그려내기보다는 동화 같은 행복감 속에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 관한 한 감독의 의도는 성공했다. 영화 보는 내내 나는 미소를 지었고 많이 행복했다. 영화 속 상황에 미소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따스한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어준 히로카즈 감독에게도 미소를 보냈다. 한 편의 영화로 마음이 이렇듯 따스해질 수 있다니, 그것이 예술이 갖는 엄청난 힘일 것이다. 히로카즈 감독이 와세다대학교 문예학과 출신이란 것이 나에게는 예사롭지 않은 발견이자 반가움이다. 언제 시간 날 때, 이 감독의 모든 영화를 훑어볼 생각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