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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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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의뭉스럽게 평온한 오후

달빛사랑 2020. 3. 8. 15:30

헐거워진 틀니와 잇몸 사이로 성급한 봄바람이 자주 드나들었다. 봄을 맞아 방안을 정리했다. 그러는 동안 몇몇 사물들은 서너 차례 자리가 바뀌었다. 대체로 가벼운 것들이 자리를 바꿔 앉곤 했는데, 가벼운 것들은 자신이 지닌 본래의 의미조차 가볍게 생각하진 말아달라는 듯 먼지를 풀풀 날리며 머물던 자리의 깊고 선명한 자국을 보여주곤 했다. 옷장을 정리하며 많은 옷을 버렸다. 빨간 터틀넥 스웨터의 목 부분이 힘없이 늘어져 볼품이 없었지만 그것은 버리지 않았다. 버릴 수가 없었다. 익숙한 것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일을 끝내고 쉬고 있을 때 창밖에서 들리는 행상(行商)의 녹음된 목소리,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물을 내리며 문득 생각한다. 부디 카랑카랑하게 들려오는 스피커 속의 목소리만큼 그와 나의 의 생(生) 또한 단호했으면 좋겠다는……의뭉스럽게 평온한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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