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비록 미역국을 끓여드리진 못했지만.... 본문
내 일정 때문에 앞당겨서 잔치를 치르기는 했지만 오늘이 진짜 어머니의 아흔 번째 생신일입니다. 미역국을 끓여드리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뿔싸! 얼마 전 마지막 미역을 탈탈 털어 국을 끓였던 게 비로소 생각나더군요. 코앞이 슈퍼이니 얼른 가서 미역을 사다가 국을 끓여도 되는데, 촌스럽게 “어머나, 미역이 떨어졌네. 엄마 국 끓여줄려고 했는데……”라고 밝혀 버렸답니다. 당연히 엄마는 “됐다. 한 번 치렀으면 된 거지. 미역국도 난 안 좋아.”라고 말씀하셨지요. 다행히 누나가 요양보호사 아주머니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 점심 식사를 하고 와서 그나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누나는 진도 미역과 완도 미역을 각각 한 봉지씩 사다 주었습니다. 아마도 엄마는 "미역국은 드셨어요?" 하는 두 사람의 질문에 미수에 그친 내 정성을 한껏 부풀려 그녀들에게 말해주었을 게 분명합니다.
90년, 정말 만만한 삶의 이력이 아닐 수 없지요. 그 세월이 항상 봄날은 아니었다는 건 두말 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래도 엄마는 정말 잘 살아오셨습니다. 한 평생 반듯하게, 그리고 의연하게 말입니다. 나는 엄마가 우리 엄마인 게 너무도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엄마도 내가 당신의 아들인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실까요? 내 인성이나 깜냥과는 무관하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 게 분명합니다. 엄마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엄마의 남은 날 동안 친절하고 아름다운 동반자가 돼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고마워요. 태인 씨. 다시 한 번 아흔 번째 생신,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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