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짧은 여행의 기록② 본문






공기가 좋아서 그런 걸까요. 어젯밤 평소(도시에서)보다 다소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그런 걸까요. 상당히 많은 술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6시쯤 되자 한 사람 두 사람 일어나기 시작하더군요. 나는 좀 더 잠을 자고 싶었지만 수런거리는 일행들의 목소리가 들려 결국 깰 수밖에 없었지요. 가장 먼저 일어난 성겸 형과 학균 형은 텃밭을 둘러보고 있었고 준호 형은 여전히 잠자리에 있었으며 나와 명주는 테라스로 나와 담배 한 대 피우고 블루베리를 종이컵에 가득 따왔습니다. 지방에서 생활하는 아이가 상경했기 때문에 일찍 올라가야 하는 희덕이는 차편을 확인하느라 휴대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준호 형이 깨기를 기다리며 희덕이가 직접 내려준 드립커피를 마셨습니다.
준호 형이 일어나자 우리는 진안 읍내로 나가 해장국을 먹었습니다. “오빠, 해장술 한 잔 해야지.”라며 소주를 시키는 희덕이의 모습을 보며 일행들은 모두 웃었습니다. 곱상하고 얌전하던 희덕이의 변한 모습에 나는 다소 놀랐던 게 사실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터미널로 이동해 희덕이를 보낸 후, 남은 일행들은 모두 마이산으로 이동했습니다. 하늘은 맑게 개었고 햇볕은 따가웠지만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 상쾌했습니다. 마이산은 10여 년 전 동생네 가족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한 번 왔던 곳입니다. 탑사까지 가는 진입로가 그 사이 많이 변했더군요. 암마이봉 정상까지 가기로 마음먹고 산을 올랐는데, 준호 형과 성겸 형만 정상까지 올랐고, 나와 명주, 학균 형은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휴게소까지만 올랐습니다. 산행 하는 내내 입담 좋은 학균 형 때문에 얼마나 웃었던지 허리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하산을 해서 산사 초입의 식당가에 들러 산채비빔밥과 된장찌개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가격은 좀 비쌌지만 음식은 비교적 깔끔한 편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성겸 형은 그곳에서 곧바로 서울로 올라갔고 우리는 다시 학균 형 집으로 돌아와 잠시 쉬면서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학균 형은 자신이 직접 심고거둔 우엉과 돼지감자 말린 것을 한 봉지 씩 우리에게 나눠줬습니다. 또한 올 때 오이장아치를 보내준 준호 형 형수에게 주라고 앵두를 잔뜩 따주기도 했습니다. 꼭 다니러 온 자식들에게 바리바리 뭔가를 싸주시는 부모님 같아 보였습니다. 빈집에 형을 혼자 남겨두고 올라와야 하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학균 형은 애써 농담을 하며 환하게 웃어주었습니다. 나는 그 마음을 알거든요. 왁자지껄하던 집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간 후 시나브로 찾아드는 그 을씨년스러움과 허허로움을. 명절 때 어머니가 느끼는 감정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겁니다.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어찌나 무겁던지……
여행하는 동안 길을 걸으며 혹은 식탁과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며 비로소 알게 된 저마다의 진진한 사연들…… 막 웃다가도 가슴이 먹먹해지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청년시절에 만나 어울리던 문우들을 중년을 건너뛰고 장년이 되어 만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30여 년 전의 아름다운 청년들이었습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참 많은 것을 마음에 담고 올라온 여행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자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어머니, 그리고 숨죽인 채 나를 기다리고 있던 방안의 익숙한 사물들, 먼지조차 반가웠습니다. 그래요. 뭐니 뭐니 해도 집만큼 편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간담회 유감 (0) | 2019.06.25 |
---|---|
비록 미역국을 끓여드리진 못했지만.... (0) | 2019.06.24 |
짧은 여행의 기록① (0) | 2019.06.22 |
품앗이도 몸이 열 개라야 말이지 (0) | 2019.06.21 |
좋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다 (0) | 2019.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