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그렇다 나는 닫힌 사회와 그 파수꾼들을 경멸한다 본문
그렇다 나는 닫힌 사회와 그 파수꾼들을 경멸한다
―故 마광수 교수에 대한 단상
문계봉(시인, 인천민예총 상임이사)
얼마 전, 시인이자 소설가였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명민한 교수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윤동주 연구로 20대에 이미 박사학위를 받고 ‘청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던 천재 교수 마광수가 바로 그였다. 지인들에 의하면 그는 자살하기 직전까지 극심한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 명민한 천재로 하여금 견딜 수 없는 우울증에 시달리게 한 것이고, 그의 최후의 자존감을 짓밟아 이토록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한 것일까. 사실 그 이유는 마광수 자신은 물론이고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 그리고 세상도 이미 알고 있다.
마광수 교수는 1992년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를 출간한 후 서울지검으로부터 ‘음란문서 제조 및 반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치소에 수감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두 달 만에 집행유예로 나오긴 했지만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마 교수가 강의 도중 연행 된 후, 흰색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채 절망한 표정으로 법정을 오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그 비현실적이고도 반문화적 상황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모교에서도 교수직을 박탈당한 그가 다시 교단으로 돌아가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의 일 분 일 초가 아마도 마 교수에게는 참기 힘든 모멸과 형극의 시간이었을 것은 분명하다.
물론 마광수 교수의 일련의 글들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만 해도 익숙하지 않은, 아니 현재까지도 보이지 않는 사회적 금기에 의해 공공연한 논의가 결코 쉽지 않은 성 담론의 공론화와 표현의 자유 문제를 진지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켰다는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작품과 작가로서의 존재 방식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해서, 설사 그의 작품이 전통적인 소설 미학적인 관점이나 일반적인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문제가 있었다손 치더라도(물론 이것이 사실이 아님은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이미 검증된 바 있다.) 그것이 결코 그를 포승줄에 묶어 감옥에 가둘 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광수 교수로 하여금 삶과 문학에 있어 좌절과 모멸을 경험하도록 강제한 공동정범들은 한 둘이 아니다. 일단 성에 대한 표리부동한 도덕관념이 지배하던 당시의 분위기에 편승해, 예술의 문제에 대해 법의 잣대를 들이밀어 제멋대로 재단한 함량미달의 천박한 법조인들, 그리고 그 모든 일련의 상황들이 전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한,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미필적 고의에 의해 마 교수의 필화(筆禍)에 일조한 동료 교수들과 허다한 지식인 등 ‘닫힌 사회’와 그 철옹성을 지켜내려는 충실한 파수꾼들인 그들 모두가 마 교수로 하여금 자살에 이르게 한 공동정범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마광수 교수에게 닥쳤던 불행한 일들과 그의 죽음을 접하면서 1999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세칭 ‘옷 로비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아야 했던 유명 디자이너 앙드레 김을 떠올렸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그는 많은 유명인들과 교류했고, 결국 그 ‘유명인 사모님들의 이전투구’ 과정에서 옷을 판매한 당자자로 지목되어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국회청문회에 증인으로도 출석해야 했다. 그 당시 국회의원들은 패션밖에 모르던 순진무구한 디자이너에게 사건의 본질과 전혀 관계없는 그의 본명을 거론하며 이죽거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청문회에 나온 앙드레 김이 본명을 말하라는 국회의원의 질책에 “김봉남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민망하서도 눈물겨운 분위기를 동시에 자아내며 두고두고 회자되었는데, 결국 이 사건은 “알아낸 것은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본명뿐이다”라는 우스갯소리만 남긴 채 유야무야 되었다. 이때 앙드레 김이 느꼈을 모멸감을 생각해 보라. 알량한 권력을 손에 쥐고 너스레를 떨던 모질이 ‘갑들’들에게는 예술가의 자존감이란 눈곱만큼도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 교수의 경우도 그렇다. 정작 그가 우리 사회에 던졌던 문제의식의 합리적 핵심이나 그의 진정성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고, 오로지 면박과 망신주기 식으로 이루어진 여론 재판에서 한 순정한 예술가는 너무도 깊은 정신적 외상(外傷)을 입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닫힌 사회’ 안에서 온갖 권력과 기득권을 독점한, 인문학적 소양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일부 ‘영감님(법조인)’들과 위선적인 정치인 및 지식인들의 돌팔매질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좌절하고 상심하고 결국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는가. 그러한 반문화, 비예술적인 발상과 행태들이 결국 최근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전근대적인 괴물을 만들어 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개인적 자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성문제에 대해 툭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한시바삐 마련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성문제는 마치 쓰레기통에 뚜껑만 덮어 놓고 있는 양상과도 같아서, 은폐될 대로 은폐된 채 해결책을 전혀 찾지 못하고 속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새 시대의 조류에 맞는 새로운 성의식이나 성 철학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어 사회 전체를 숨 막힌 답보상태로 몰아가고 있으며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이중적 사고방식에 기인하는 보수적 억압의 논리만이 판을 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중에서)
위에 소개한 마광수 교수의 진술은 어쩌면 ‘닫힌 사회와 그 파수꾼들’을 향한 절박하면서도 안타까운 단말마가 아니었을까. 천재적인 학자이자 명민했던 소설가였고 나의 선배이자 은사였던 마광수 교수여, 이제는 편견과 모멸이 없는 당신의 하늘에서 부디 자유롭기를.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우창 교수의 강연을 듣다 (0) | 2017.09.14 |
---|---|
구보댄스컴퍼니 17주년 기념 행사에 다녀왔어요 (0) | 2017.09.13 |
당연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0) | 2017.09.11 |
비는 이곳에도 내리고 저 먼 곳에서도 내리고 (0) | 2017.09.10 |
백범의 발자취를 따라서 (0) | 2017.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