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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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혼을 위해 우리 모두가 나설 때입니다

달빛사랑 2017. 8. 6. 17:00

한 사람이 있어요. 그는 국문학 박사이고 연구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때 화랑을 운영하기도 했고, 척박한 인천의 출판 상황을 타개하고자 출판사를 설립해서 지역의 의미 있는 작업들을 책으로 엮어내기도 했습니다. 더 과거로 올라가면 인하대 앞과 신포동에서 막걸리 집을 운영하여 돈도 제법 벌었고, 나중에는 지역신문사에 들어가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력은 이처럼 무척 다채롭습니다. 화랑과 출판사를 운영할 때는 스스로를 구월동 백작이라고 칭하며 구월동 문화예술회관 근처의 바와 술집들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었지요. 술값도 잘 내고 인색하지 않으며 판을 키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지금은 친구들과 아내로부터 외면당하며 쓸쓸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술 때문이지요. 그는 술만 마시며 돌변합니다. 알코올중독 증상을 보이는 것이지요. 소리 지르고 패악부리고 가끔은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하는 그의 술버릇을 목격한 지인들은 두 번 다시 그와는 술을 마시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화조차도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점점 그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었고 그 외로움을 이겨내고자 다시 술을 마시고 패악을 부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현재 출판사는 그의 아내가 운영하고 있고 그는 유명 대학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무척 순박하며 집중력도 대단하여 며칠 사이에 서너 편의 논문을 써내기도 하지요. 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은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언젠가는 스스로도 자신의 증세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알코올 치료센터에 등록하여 처방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증상은 눈에 띄게 호전되었지요. 그러나 알코올 중독은 아무리 증세가 호전되었더라도 다시 술을 입에 대는 순간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결국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약에 내성이 생긴 몸은 이전보다 훨씬 심각하게 그를 망가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술을 마시다가 취하면 아무 곳이나 쓰러져 자고 자다 깨면 다시 일어나 술을 마시는 일이 반복되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요즘 늘 눈이 풀려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당한 봉변을 이야기하는 것이 요즘 단골술집에서 만나는 지인들의 일과가 되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합니다. 물론 나에게는 아직까지 크게 실수를 한 적이 없긴 하지만 나 역시 그가 부리는 술주정과 그로 인해 봉변을 당한 사람들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어제 고전 연구자인 온고재 이우재 선배와 가진 술자리에서도 그가 화제로 올랐습니다. 선배도 문자나 전화로 욕설을 들었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귀찮아 죽을 지경이라고 고충을 털어놓더군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Y박사는 치료가 필요해요. 그리고 그는 지금 무척 외로울 겁니다. 그 외로움이 자꾸 그 친구를 엇나가게 만들고 있는 거 같아요.”라고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실제로 나는 그의 일탈과 주정의 상당 부분은 외로움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사람들로부터 경원당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술판에서의 불편함과 부담스러움만 이야기 했을 뿐 아무도 그에게 가슴에서 우러난 진정성 있는 조언을 해준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하지는 않지만 그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 이를테면 아내, 자식 혹은 그가 많이 의지하는 선배들은 그에게 따뜻한 조언을 해주고 끊임없는 관심을 가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그러한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제 임계점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그의 음주를 방치하고 주정을 용인하게 될 경우 그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상태가 될 것은 뻔한 일입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이라고 생각들 하겠지만, 그리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니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라는 말들을 하고 싶겠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그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한때 그와 어울려 다니며 술을 먹었던 사람들, 한때 그의 출판사에서 책을 헐값에 내거나 혹은 여러 편의를 제공받았던 사람들은 더욱 더 그의 무너짐을 방관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나부터라도 내일 당장 아는 선배들에게 연락을 해서 그의 폭음과 일탈을 저지할 수 있는 대책을 모색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모두들 한 번만 더 나에게 실수를 할 경우 그냥 놔두지 않을 거야.”라든가 다음번에 그러면 주먹을 날릴 거야.”라는 말만 하는 것은 회생 가능성이 있는 한 명의 명민했던 인간과 그의 영혼에 대한 방치 혹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집단 따돌림에 다름 아니라 생각합니다. 외로운 그에게는 관심과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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