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아들아 고맙다 본문
오늘 아침, 오랜만에 집을 찾은 잠든 아들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나왔어요. 지갑 속에 있던 만 원짜리 서너 장을 모두 꺼내 아들의 머리맡에 놓아두고 나왔는데, 아들은 안 보는 사이 약간 살집이 붙은 것 같았습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느라 무척 바쁘고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을 텐데 한 끼 식사조차 같이 못하고 혼자 집을 나서려니 괜스레 맘이 짠해지더군요. 오후에 전화 통화를 하며 들은 건데 아들이 이번 대학기말고사에서 5등을 했다는군요. 그래서 장학금을 또 받을 수 있을 거라며 밝은 목소리로 말을 전해왔습니다. “잘했다. 그럼, 누구 아들인데.” 이렇게 말하는 내 마음도 오전과는 달리 환해졌습니다. 학과 공부하랴 고시 공부하랴 무척 정신이 없었을 텐데도 제 몫의 역할을 다해주는 아들이 무척 대견했습니다. “너무 무리하진 말고. 건강 잘 챙기면서 공부해.”라고 했을 때 “응!”하고 대답하는 아들의 목소리는 꼭 유치원 다닐 때의 아이 같았습니다. 아들의 목소리에 세상의 때가 아직은 묻지 않은 것 같아서 흐뭇했습니다. 여전히 할머니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살갑게 대해주는 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렇게 아들이 고마울 수 없습니다. 가난한 시인 아비로부터 넉넉한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도 반듯하게 커준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요. 아들의 전화 때문에 덥고 짜증나는 오후가 갑자기 상쾌하고 기분 좋은 오후가 되었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할아버지 기일에 참석하기 어렵다며 미리 할머니를 만나서 애교를 시전하고 돌아간 아들이 내 책상에 놓고 간.... 이건 뭐지. 복학생 '오빠'의 클라스란 이런 건가. 그렇잖아도 놀기 좋아하는 애가 '놀기에 최적화 된' 동네에 위치한 홍대에 들어갈 때 나름 걱정이 많았는데... 군 제대하고 복학한 지 2년, 줄곧 장학금을 받긴 했지만...애비 생전에 받아본 적 없는 비현실적 성적표를 직접 목도하니 대견하면서도 할 말이 없다. 군대에서 뭔 일이 있었던 걸까. 암튼 수고했다. 알바 필요읎따. 장학금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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