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여름이 불쑥 와버렸다 본문
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고 몇 차례 거센 비가 내리고 나더니 불쑥 여름이 이곳을 찾았다. 후배는 다시 암세포가 뇌로 전이되어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연락을 해왔다. 제 몫을 누리지도 못하며 봄이 머뭇거리는 사이 낯선 손님처럼 여름은 찾아들고, 다시 서너 개의 부고를 받았다. 떠나는 봄과 함께 이승을 벗어나는 망자들의 기침소리. 그렇게 계절은 바뀌고 있는 중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옷가지들을 정리했다. 버리기 아까운 옷들까지도 다시 입을 것 같지 않은 옷들은 과감하게 버렸다. 가벼워진 옷걸이가 마음에 들었다. 샤워를 하고 모처럼 어머니를 모셔오려고 교회를 찾았다. 문 앞에서 기다리니 구부정한 어깨의 어머니가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정문으로 나오시다 나를 보자 깜짝 놀라셨다. 오늘은 교회 차가 운행을 하지 않아 걸어와야 해서 모시러 왔다고 하니까 무척이나 환하게 웃으셨다. 가방을 건네받고 길을 가면서 “업어드릴까요?”라고 말을 했더니 “나 아직 업혀 다닐 정도 아니다. 운동 삼아서 종종 걸어 다닌다.”라고 대답하셨다.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초여름 날씨처럼 더운 탓에 거리에는 반팔 반바지 차림의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반팔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지만 춥기보다는 시원했다. 어머니와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남동구청 후문 쪽의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냥 기분이 좋아서 나는 연신 웃었다. 밝은 햇살 아래 어머니의 화장이 번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지만 흉해보이지 않았다. 최근 두 건의 부고는 모두 지인들의 모친상을 알리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봄날의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지만 가끔 행복에 겨운 나는 어머니의 ‘지나친’ 관심에 (고마워하기보다는) 짜증스런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밥을 먹을 때면 옆에서 지켜보다 “밥 더 줄까?”라는 물음을 거푸 하신다거나 쉰 살이 훨씬 넘은 내가 집을 나설 때, “쓸데없는 데(집회나 시위현장) 돌아다니지 말고 술 너무 마시지 말거라.”라는 말을 빼먹지 않는다. 또 내가 주방에서 뭔가를 할 때면 그냥 앉아계시지 못하고 내 주변을 왔다 갔다 하시며 괜한 참견을 하시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들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일진대 나는 가끔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며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던 적이 있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얼마나 크게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을까. 세월이 흘러 어머님이 내 곁에 없게 되었을 때 나는 그 모든 어머니의 ‘참견’을 몹시도 그리워하며 눈물지을 게 분명하다. 어머니에게 자식들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사랑을 줘야 할 ‘어린 애들’인 것이다.
4월의 마지막 날, 사무실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어머니와 이야기 하고 밥 먹고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암 것도 한 것이 없는 하루 같지만 마음만은 무척 넉넉해진 하루였다고 생각된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지? (0) | 2017.05.02 |
---|---|
2017년 메이데이 (0) | 2017.05.01 |
나에 대해 기록하다-(1)출생과 고향 (0) | 2017.04.29 |
아들이 왔다 (0) | 2017.04.28 |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다 (0) | 2017.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