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다 본문
몇 차례 큰 비를 견딘 벚꽃 잎들이 찢긴 영수증 조각처럼 드문드문 날리는 봄날 오후. 지는 꽃들을 얼굴로 받으며 버스정류장 담벼락 앞에 서 있습니다. 손질하지 않은 머리칼 위로 바람이 지날 때는, 생의 굽이굽이 옹이로 영글어 온 낯익은 모멸이 잠시 주머니 속에서 덜걱거렸지만 난 끝끝내 모른 체하며 얼굴로 손바닥으로 떨어지는 꽃들을 받고 있습니다. 천연덕스러움과 청승맞음의 경계에 서서, 가는 봄날을 바라보고 있는 거지요. 이름도 예쁜 연수구 선학동,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중입니다.(오후 6시20분)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와서] 제고 총동문산우회 회장 선배가 우리 기수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고 싶다고 해서 모인 자리였다. 회비가 없어서 그런가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함께 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친구들이 많아서 반가웠다. 쉰살이 넘었는데도 아직 불 같은 성격들을 갈무리하지 못해 서로가 적대시 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오지랖이 발동해 중재를 해보려고 서너 번 노력해 봤지만 자존심과 질투가 복잡하게 버무려진 그들 사이의 감정의 골을 도저히 메울 수는 없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이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화평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하게 되었다. 양비 양시를 넘나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런 스탠스를 취할 수 있게 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은 없다. 다만 기본적으로 다툼을 싫어하는 내 천성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 볼 뿐이다. 간만에 많이 떠들고 유쾌하게 웃어본 시간이었다. 밴댕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기홍이 택시비를 하라며 2만 원을 주었다. 돈이 있었지만 그냥 받았다. 그게 친구를 향한 기홍이 방식의 마음 씀씀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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