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낯선 고양이와의 하룻밤 본문
전날, 새벽까지 술 마시고 귀가할 때였다.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졸랑졸랑 나를 따라오는 게 아닌가? 녀석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전혀 망설임없이 먼저 안으로 쏙 들어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머리를 내 발에 문지르며 귀여운 척을 해댔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서 따라 내린 녀석은 스스럼없이 우리집 문앞까지 와서 천연덕스럽게 문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황당함과 앙증맞음의 교차... 집에 들어서자 나는 얼른 물 한 종지와 멸치를, 녀석 먹으라고 내 방문 앞에 놓아주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는데, 어랍쇼.. 이 녀석이 내 품으로 쏙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나는 뒤척이다 혹시 녀석을 깔아뭉개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침대 옆에 방석을 하나 놓아주고, 손바닥으로 그것을 툭툭 치며 자리를 옮기라고 신호를 주자, 녀석은 방석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몸을 웅크린 채 잠잘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나는 이내 잠이 들었다. 잠 결에 녀석의 꼬리와 이마가 내 팔과 다리에 닿는 느낌이 있었다. 부드러웠다. 불쾌하지 않았다. 밤새 온갖 동물들과 어울러져 뒹구는 꿈을 꾼 것 같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 녀석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서운하던지... 나는 녀석의 안부가 궁금해서 아파트 현관에 나가 '나비야, 나비야'를 외쳤다. 그러자 화단 쪽에서 녀석이 포르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반가운 상봉.....^^ 다시 나에게 다가와 몸을 비벼대는 녀석...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걸로 봐서 길고양이는 아닌 듯 싶고, 길을 잃었거나 유기된 고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어머님께 들은 말인데, 새벽에 화장실을 가시려고 거실로 나왔더니 무언가가 쪼르르 달려와 어머님 다리에 머리를 부벼대서 너무도 놀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양이인 것을 확인했지만, 내가 데려왔으려니 하고 방으로 들어가 다시 잠을 청하셨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녀석은 소파 위에서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머님이 외출하시려고 현관문을 나서자 녀석도 졸랑졸랑 따라 나서더라는 것이다. 어머님은 천식이 있는 나를 걱정하셔서 녀석의 '출현'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다가, 녀석 스스로 문을 나서는 걸 보고 '미필적 고의의 심정'으로 그냥 놔뒀을 것이 분명하다.(놀토-노는 토요일-이라서 나보다도 늦게 일어난 수현이는 전후 이야기와 내가 찍어온 사진을 접하고는, 귀여운 고양이를 할머니께서 야박하게 '내쫓았다며' 무척이나 서운해했다.)
경비 아저씨와 청소 아주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이 녀석이 며칠 전부터 나타나 이집 저집 안 가는데 없이 방문하고 다닌다고 하던데... 앞으로 날은 점점 추워올 텐데... 데려다 키울 형편은 안 되고, 걱정은 되고... 그래도 하룻밤 나와 동침한 사인데... 이렇게 맺어진 인연을 어찌해야 할까나. 더구나 암컷이라서 덜컥 새끼를 배게 되면.. 생활은 더욱 힘겨워질 텐데...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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