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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한림별곡>과 <청산별곡> 본문

일상

<한림별곡>과 <청산별곡>

달빛사랑 2010. 9. 9. 20:20

 

 

 

 

 

 

 

 

 

[현대어 해석]

당당당 당추자(호도나무) 쥐엄나무에

붉은 그네를 맵니다.

당기시라 미시라 정소년이여.

아, 내가 가는 곳에 남이 갈까 두렵다.

옥을 깎은 듯 고운 손길에, 옥을 깎은 듯 고운 손길에

아, 마주 손잡고 노니는 정경, 그것이 어떠합니까?(참으로 좋습니다) -경기체가, '한림별곡' 제8장

 

 

 

 

 

 

 

 

 

 

 

 [현대어 해석]

살겠노라 살겠노라 청산에 살겠노라.

머루와 다래를 먹고 청산에 살겠노라.

 

우는구나 우는구나 새여, 자고 일어나 우는구나 새여.

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울고 있노라.

 

가는 새 가는 새 본다. 물 아래로 날아가는 새 본다.

이끼 묻은 쟁기(농기구)를 가지고 물아래로 날아가는 새 본다.

 

이럭저럭 하여 낮은 지내 왔건만

(찾아) 올 사람도 (찾아) 갈 사람도 없는 밤은 또 어찌할 것인가.

 

어디다 던지는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는 돌인가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는데 맞아서 울고 있노라.

 

살겠노라 살겠노라 바다에 살겠노라

나문재(해초), 굴, 조개를 먹고 바다에 살겠노라.

 

가다가 가다가 듣노라 외딴 부엌 쪽을 지나가다가 듣노라

사슴이 장대에 올라가서 해금(奚琴)을 켜는 것을 듣노라.

 

가다 보니 배부른 독에 진한 강술(强酒)를 빚는구나

조롱박꽃 모양의 누룩이 매워 붙잡으니 낸들 어찌 하겠는가.-고려가요, '청산별곡' 전문

 

 

위에 소개한 두 '노래'는 모두 같은 시대(고려)에 불려진 노래들이다. 차이가 있다면,

'한림별곡'은 한림제유(翰林諸儒), 즉, 말 그대로 귀족들의 노래이고, '청산별곡'은 서민들이 부른 '속요'이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이것이 과연 동시대에 불려진 노래인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한림별곡'의 내용을 살펴보면, '붉은 실로 매단 붉은 그네'가 나오는데, 그네의 화려함도 그렇거니와,

뒤이어 표현된 '옥을 깎은 듯한 고운 손길'확실히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손'이 아님은 분명하다.

더구나 '내 가는 곳에 남이 갈까 두렵다'고 하며, 자신들만의 풍류의 현장에

에 어울리지 않는 '계층'들이 끼어들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꼴사나운 '선민의식'인가? 

오죽하면, 조선 최고의 학자 이황 선생은 '한림별곡'에 대해,

"문인의 입에서 나왔지만 교만하고 방탕한데다 비루하게 희롱하고 절도 없이 좋아하는 내용이어서

 더욱 군자가 숭상할 바가 아니다."라고 질타했을까. 

 

반면, '청산별곡'의 시적화자(당연하게도 고려시대의 서민들)는 현실의 삶이 너무도 고달퍼,

도피처로써 '청산'과 '바다'를 상정하고, 현실을 벗어나, 그곳에서 살고싶다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운명적 고뇌와 극단의 외로움을 술로써 달래며, 산새의 울음소리에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고려 시대는 건국초기부터 '무신의 난'을 비롯하여,

거란, 여진, 몽골 등 외적으로부터의 침략이 잦았던 시대였다.

하여, 당연하게도 서민들의 삶은 늘 '백척간두'의 상황이었고, 피난과 항쟁의 연속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시대적 아픔과 환란의 고통은 애오라지 서민들의 몫이었다는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한 부류의 귀족들은 화려한 풍류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대다수의 서민들은 '고통과 도피', '체념과 절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월이 아무리 흘러흘러도, 고통을 분담하지 않는 지배층과, 

온전히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서민들의 삶의 모습, 그 극단의 대비 상황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21세기 오늘날의 현실도 그렇지 않은가? 외환위기와 국가경제의 침체의 상황에도

부유층과 지배층의 과소비와 반서민적 삶의 모습은 고려시대 귀족과 너무도 흡사하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빚잔치를 벌이며 힘겹게 현실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대다수 서민들의 몫일 뿐이잖는가? 

10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러한 사회구조적 모순이 아직도 온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무척이나 씁쓸하고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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