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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나의 '울음터'는 어디인가? 본문

일상

나의 '울음터'는 어디인가?

달빛사랑 2010. 9. 12. 20:00

 

 

 말을 채찍질하여 수십 보를 채 못 가서 겨우 산기슭을 벗어나자 눈앞이 아찔해지며 눈에 헛것이 오르락내리락하여 현란했다.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사람이란 본디 어디고 붙어 의지하는 데가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 말을 멈추고 사방을 돌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이마에 대고 말했다.
 “좋은 울음터로다. 한바탕 울어볼 만하구나!”
 정 진사가,
 “이 천지간에 이런 넓은 안계(眼界)를 만나 홀연 울고 싶다니 그 무슨 말씀이오?”

 하기에 나는,
“참 그렇겠네, 그러나 아니거든! 천고의 영웅은 잘 울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지만  불과 두어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을 그저 옷깃을 적셨을 뿐이요, 아직까지 그 울음소리가 쇠나 돌에서 짜 나온 듯하여 천지에 가득 찼다는 소리를 들어 보진 못했소이다. 사람들은 다만 안다는 것이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칠정(七情) 중에서 ‘슬픈 감정[哀]’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 알았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를 겝니다.

 기쁨[喜]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노여움[怒]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樂]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사랑[愛]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미움[惡]이 극에 달하여도 울게 되고, 욕심[欲]이 사무치면 울게 되니, 답답하고 울적한 감정을 확 풀어버리는 것으로 소리쳐 우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소이다.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뇌성벽력에 비할 수 있는 게요. 복받쳐 나오는 감정이 이치에 맞아 터지는 것이 웃음과 뭐 다르리요?
 사람들의 보통 감정은 이러한 지극한 감정을 겪어 보지도 못한 채 교묘하게 칠정을 늘어놓고 '슬픈 감정[哀]'에다 울음을 짜 맞춘 것이오. 이러므로 사람이 죽어 초상을 치를 때 이내 억지로라도 '아이고', '어이'라고 부르짖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말 칠정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하고 참다운 소리는 참고 억눌리어 천지 사이에 쌓이고 맺혀서 감히 터져나올 수 없소이다. 저 한(漢)나라의 가의(賈誼)는 자기의 울음터를 얻지 못하고 참다 못하여 필경은 선실(宣室)을 향하여 한번 큰 소리로 울부짖었으니, 어찌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 수 있었으리요.”

-박지원, <열하일기>, '통곡할만한 자리' 중에서

 

 

유달리 눈물이 많은 나로서는 이 글에 드러난 연암 박지원의 '눈물론'에 절대적인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열하일기> 중 이 부분에서 언급된 연암의 울음 혹은 눈물은 드넓은 요동 벌판과 마주하였을 때 떠오른 

좁고 어두운 조선의 현실을 아파하는 울음 혹은 눈물이었겠지만),

아직은 '미움이 극에 달해' 울어본 경험이나, '욕심이 사무쳐서' 울어본 경험은 없지만,

사랑과 슬픔, 기쁨과 즐거움의 눈물로 옷소매를 제법 적셔왔던 것은 사실이다.

나이들어 자꾸 눈물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늙었다는 것의 증표'이지 섬세한 감수성의 소산이 아니잖는가 하고,

최근에는 스스로 의구심을 가져보지만, 사실, 청소년 시기에도 소설이나 영화를 보다가 쉽게 맘이 격동되어

눈물을 흘렸던 걸 생각해 보면, 내가 다른 사람보다 눈물이 많은 건 사실인 것 같다.

심지어 만화영화로 만들어진 '빨강머리 앤'이나, '엄마찾아 삼만 리'를 보면서도 자주 울었을 정도니까...^^ 

 

그런데... 어떤 '종류'의 울음인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울음이 처연하거나 상스럽게 보이지 않을,

자신만의 '울음터'를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있고 행복한 일인가? 여기서 말하는 '울음터'는 비단

가시적인 공간개념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 등을 토닥여 주는 친구의 마음도

내 울음터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나에게 무릎을 내어주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실 어머님의 굽은 어깨와

좁은 등도 내 울음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활한 중국 대륙의 끝 간데 없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진부한 탄성이 아니라, 

'좋은 울음터로다. 한바탕 울어볼만 하구나'라고 말한 연암의 혜안과 감수성에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으며, 미소짓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나에게는 가장 따뜻하면서도 편안한 울음터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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