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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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조르바, 그리고 브라보 마이 라이프...!

달빛사랑 2009. 9. 12. 23:12

 

 

....힌두교도들은 <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중에서

 

 

"새끼 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구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걸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리쳐 잘라버렸어요."

 

 

 

"결혼 말인가요? 공식적으로는 한 번 했지요.

 비공식적으로는 천 번, 아니 3천 번쯤 될 거요.

 정확하게 몇 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니는 거 봤어요."

 

 

 

"확대경으로 보면 물속에 벌레가 우굴우굴한대요.

 자, 갈증을 참을 거요, 아니면 확대경 확 부숴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한때 조르바처럼 살기를 꿈꾼 적이 있다.
이 늙은 그리스인의 질풍노도의 삶은
명확한 지향을 잃은 슬픈 시대의 청춘들에게는
영웅이자 롤 모델(role model)이었기 때문이다.
권위와 위선을 비웃으며 에게와 지중해 푸른 바다 위를
스치는 바람처럼, '흐르는 삶'을 살았던 조르바.
내가 곧 마주하게 될 쉰(50)이라는 나이는

동양적 의미로는, 천명(天命)을 아는 나이(知天命)라고 했던가.
천명(天命)을 안다는 것은, 조르바의 삶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흐르는 삶'이라기보다는
무욕(無欲)과 신독(愼獨)에 가까운 삶일 게다.
일탈과 모험보다는 절제와 안정을 지향하는 삶...
그런데.... 난 그렇게 살기 싫어졌다.
조르바의 얼치기 아류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난 물레를 잘 돌리기 위해 손가락을 자를 생각은 없다)
내 앞에 펼쳐진 삶의 바다와 그곳에 부는 '폭풍'까지도
이제는 당당히 맞고, 부딪치며, 즐기기 위한,
지난한 항해를 할 용의가 있다는 말이다.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난 소중하니까',

그리고 틀지워진 삶을 살기에는
남은 내 삶이 너무도 아깝고... 또한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이.. 조르바, 그리고...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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