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시간아, 가기도 잘도 가는구나 (5-4-일, 맑음) 본문
생각해 보면, 아니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흐른)다. 그렇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늙고 변하고 사멸해 간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빠르다’라는 속도감은 상대적이다. 하루 24시간, 1시간 60분, 1분 60초인 건 누구에게나 똑같다. 다만 같은 하루지만 누구에게는 길게 느껴지고 누구에게는 짧게 느껴질 수 있는 건, 각자가 처한 상황 때문이다.
괴로운 상황이라면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고 느낄 것이고 즐거운 상황이라면 시간이 짧게 흐른다고 느낄 것이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시간의 흐름은 더욱 빠르게 느껴진다. 젊었을 때는 그 젊음이 영원할 것 같아서, 시간 아까운 줄도 모르고 오히려 가지 않는 시간을 탓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60대인 요즘, 나는 시간이 쏜 화살처럼 빠르다는 걸 매일 실감한다.
나는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 시간 뒤에서 때로는 쓸쓸함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고, 또 때로는 스스로 질책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왜 그때 나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든지, ‘왜 나는 그때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까?’와 같은 쓸쓸한 회한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당연히 몸 상태도 예전 같지 않다. 잦은 감기와 불면, 사라진 유연성, 침침해지는 눈, 아픈 허리, 나빠지는 기억력, 성겨지는 머리카락을 보고, 겪고 확인하는 일은 쓸쓸하다.
그런 쓸쓸함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마저도 무뎌지게 만든다. 왜소한 존재감은 사랑조차 사치스럽게 느끼기 때문이다. 이 나이 되도록 해놓은 것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넉넉하지도 않고, 외모가 뛰어나지도 않으며 체력이 강하지도 않다. 그저 내 또래 평균치보다 너무 아래 아닌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뿐이다. 물론 재산은 평균치보다 훨씬 아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이렇듯 쓸쓸함과 자괴감만 느끼며 남은 삶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왜소한 존재적 상황’을 반전시킬 뾰족한 대안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숨이나 폭폭 쉬며 남은 삶을 소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다면 어쩔 것인가? 답은 하나다. 즉, 별로 가진 게 없는 사람의 특기를 살리면 되는데, 그건 다름 아닌 정신 승리다. 매 상황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 이를테면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라든가, ‘늙고 약해지는 건 생명 있는 존재의 필연이야’라든가, ‘어차피 미남이나 추남이나, 부자나 가난뱅이나 죽음 앞에서는 공평한 거야’라는 식으로 나의 상황을 일반화하면 되는 일이다.
물론 자신의 ‘주관적’ 상황을 모두의 상황으로 일반화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과 남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상황을 특별하게 만든다. 즉, 상대적 부족함을 ‘나에게만 닥친 가난’, ‘나에게만 닥친 불행’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건 그만큼 힘들다. 그러나 이 힘든 일을 할 수 있어야 세월의 공격에 초연할 수 있다. 매일 세월의 덧없음에 실망하고 살 것인가, 아니면 남은 시간만큼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주체적 삶을 살 것인가? 나는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대답은 진부하지만, 자명하다.
나는 물론 도인이 아니다. 그저 범부(凡夫)일 뿐이다.
시시때때로 실망하고 슬퍼하고 좌절한다.
그런 나의 선택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수조차 없다면
그건 얼마나 고착된 삶인가? 설사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내 삶에 관한 한 나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
그것이 옳다. 그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바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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