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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배려와 간섭, 고마움과 불편함의 경계 (2-17-월, 맑음) 본문

일상

배려와 간섭, 고마움과 불편함의 경계 (2-17-월, 맑음)

달빛사랑 2025. 2. 17. 23:25

 

출근하지 않는 날이어서 내 방식대로 하루를 소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보름을 챙기지도 못했고, 큰누나가 감기에 걸려 한동안 문밖출입을 안 한 탓에 형제들끼리 만난 지 오래되었다며, 오후에 누나들이 청국장과 차돌박이 서너 팩을 사 들고 집에 왔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그때 막 한숨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을 때여서 그녀들의 방문이 약간 귀찮았다.

게다가 노크하긴 했지만 똑똑 두 번 두드린 후 내 방문을 벌컥 열고서는 "동생, 고기 사 왔어. 같이 저녁 먹자"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다행히 잠 기운이 완전히 달아난 게 아니어서 얼른 이불을 끌어당기며 "난 알아서 먹을 테니 누나들끼리 맛있게 먹어요" 하고 돌아누웠다. "먹을 때 같이 먹자"라고 한번 더 권했지만, 내가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지금은 잘래요" 했더니, "그럴래?" 하고 문을 닫고는 자기들끼리 뭐라고 수군거렸다. 서운했겠지만, 할 수 없었다. 나는 너무 피곤했고 잠이 쏟아졌으니까.

한 시간 반 정도 자고 일어났더니 누나들은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끝낸 후 방에 들어가 쉬고 있었다. 고기를 구운 탓에 기름이 앉은 주방 바닥이 미끌미끌했다. 밥을 먹기 위해 냉장고에 따로 덜어놓은 내 몫의 고기를 굽고 청국장을 다시 데웠다. 점심에 먹다 남은 김치찌개는 팩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큰누나가 방문을 열고 "밥 먹으려고? 냉장고에 있는 고기 구워서 먹어" 했다. 알겠다고 대답했는데도 큰누나는 문 앞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문을 닫았다. 뭔가 도울 일이 없나 하고 그랬을 텐데, 솔직히 나는 그런 누나들의 행동이 고맙다기보다 귀찮았다. 한편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한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왜 동생을 챙기려는 누나들의 마음을 매번 귀찮아하는 걸까" 하고 밥 먹는 내내 생각했다.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혼자 있는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설사 형제일지라도 내 삶의 영역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게 부담스러운 것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짜증 낼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자주 만나 대화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히키코모리로 살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원치 않는 도움을 굳이 주겠다고 나서는 것도 상대에게는 (아무리 형제일지라도) 부담스러운 일일 수 있다. 아닌가? 식사와 살림을 챙겨주는 것도 배려겠지만, 형제의 개인 공간(영역)과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도 배려이다. 이 부분에 대한 온도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이상 누나들은 한결같이 서운할 것이고, 나는 한결같이 귀찮을 것이다. 

그래도 식사 마치고 양치하면서 "누나들이 사온 고기와 된장국 덕분에 오랜만에 맛있게 식사했네요" 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잘한 일이다. 처음은 늘 어렵다. 어려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면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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