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겨울의 본대가 도착했다 (11-18-월, 맑음) 본문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짧은 생의 가을을 위한 배려였을까, 그간 변죽만 울리던 겨울의 보폭이 갑자기 빨라졌다. 보일러 온도를 23도로 1도 올렸다. 그런대로 평화로운 하루였다. 큰누나의 전화를 받기까지는……. 저녁을 위해 미역을 물에 넣고 불기를 기다릴 때, 큰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싸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전화를 건 누나는 숨이 쉬기 어려워 죽을 것 같다며 택시를 불러 타고 우리 집에 왔다.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그러나 잠시 앉아 숨을 고르자 혈색이 돌아왔고 숨쉬기도 편해졌다. 미역국에 밥 반 그릇을 먹기도 했다.
설거지하고 운동하고 샤워를 끝낸 후 누나가 쉬고 있는 안방 문 앞에서 가볍게 노크한 후 (방문은 열지 않고) “어디 불편하면 언제든지 말해요” 했더니, 방 안에서 “그럴게.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은 괜찮아”라는 대답이 들렸다. 다행이었다. 내방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암만해도 누나는 공황장애가 있거나 (그런 병이 만약 있다면) 특정 공간에만 가면 숨쉬기가 힘들어지는, ‘특정 공간 기피증’이 있는 게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매형이 돌아가신 후 (자기 집인데도 자려고 눕기만 하면) 자주 호흡이 가빠 숨쉬기가 어렵다가도 우리 집에만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런 증상이 사라지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텅 빈 자기 집에서 겪고 있는 호흡곤란은 분명 공황장애와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지금 사는 집에서 나오는 것, 그게 아니면 방법이 없다. 나오지 않고 그냥 그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정신과에 가서 공황장애 약을 처방받아 먹거나 누군가(아들인 민규 내외라면 가장 좋겠지)와 함께 지내야 한다. 혼자 있으면 안 된다. 자식들(조카들)에게도 알려야 하고 본인도 단단히 맘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큰누나는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만이라도 당분간 조카들과 지내라는 작은누나의 말을 듣자마자 “내가 애들 눈치 보며 왜 거기서 지내? 난 싫어.”라고 대답했다.
큰누나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런 반응은 정말 이기적이다. 직장 다니는 나와 작은누나는 혼자 고즈넉이 쉬고 싶을 때가 많다. 가끔은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울 때가 있다. 게다가 작은누나는 2교대를 하는 직장인이다. 밤일 마치고 돌아온 아침에는 쉬거나 잠을 자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작은누나는 5분 대기조처럼 큰누나의 수발을 들어야 했다. 이제 그러면 안 된다. 큰누나를 돌봐야 하는 일은 그녀의 자식들이 해야 할 일이다. 물론 형제인 우리도 근처 살며 서로 연락하고 안부 묻고 갑자기 탈이 나면 보살피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나와 작은누나가 흡사 병든 노모를 모시듯 큰누나를 돌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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