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모둠회와 메밀굴칼국수 (1-6-월, 흐림) 본문
저녁에는 은준과 함께 그가 며칠 전 함께 들러보자고 했던 손칼국숫집에 들러 모둠회(병어, 준치, 밴댕이)를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화평동 으슥한 골목에 자리한 이 식당(술집)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많은 마니아를 거느린 식당이다. 실제로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이 집을 소개하는 방문 후기들이 엄청 많다. 주인은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고 (나는 사장이 나이가 많은 할머니일 줄 알았다)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회는 대자 한 접시에 2만 원인데, 회 맛이야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이 집의 양념장만큼은 정말 일품이었다. 이 집 단골들은 아마도 그 양념장의 새콤달콤한 맛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술값은 현금으로 받고, 만약 카드로 계산하면 일정한 수수료가 더 붙는다. 간판이 칼국숫집이라 칼국수도 먹고 싶었지만, 칼국수는 점심 메뉴로 오후 3시까지밖에 안 판다고 해서 아쉬웠다.
식당의 품격(맛과 가격, 재료의 신선도 등) 면에서는 양호한 편이었지만, 은준의 설레발만큼은 솔직히 아니었다. 그만한 노포들은 찾으면 널려있다. 구월동 밴댕이 골목만 해도 2만 원짜리 밴댕이 병어 모둠회는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는다. 게다가 이곳은 현금 계산만(물론 카드로 결제할 수도 있으나 사장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데다가 웃돈을 얹어 결제해야 한다) 가능하고 손님이 너무 많아 번잡스럽다. 물론 손님이 많다는 건 그만큼 음식 맛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끔 스스로 분위기에 젖어 허름한 것에서 향수를 느끼고, 불친절한 사장의 모습에서 정을 느끼는, 손님들의 진부한 술집(식당) 취향이 작동한 탓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나쁘지는 않으나 굳이 우리 동네에서 그 먼 동인천의 골목까지 찾아갈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2차는 자기가 사겠다는 은준을 따라 도화동에 있는 ‘백령면옥’에 들러 ‘메밀 굴 칼국수’를 먹었다. 물론 소주도 주문했지만, 배도 고프고 한 탓에 이 집에서는 술보다는 음식이 우선이었다. 평소 이곳에 들를 때면 늘 수육과 빈대떡, 물냉면을 먹었지만, 오늘은 날도 춥고 맛도 궁금해서 굴칼국수를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정작 손칼국숫집에서는 못 먹은 칼국수를 냉면집에서 먹게 되었다. 냉면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 이 식당에 가산점을 준 것도 있겠지만, 가격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백령면옥이야말로 일등 맛집이다. 이곳에서는 한 번도 음식으로 배신당해 본 적이 없다.
칼국수를 국물까지 싹싹 긁어 먹고 9시 30쯤 일어나 제물포역에서 전철 타고 귀가했다. 식당에서 집까지 정확하게 35분 걸렸다. 축복받을진저, 인천지하철 2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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