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어머니 4주기 추도예배 (1-5-일, 폭설) 본문
어머니 4주기 추도예배를 보기로 한 날, 생각보다 새벽부터 많은 눈이 내렸다. 약속 시간인 10시 30이 얼추 되었을 때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눈 때문에 제시간에 도착하기 어렵다는 것과 가능하다면 시간을 오후로 변경하면 어떻겠냐고 묻는 전화였다. 폭설의 기세를 보며 아예 그때까지 출발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12시로 약속 시간을 변경하고 강설(降雪)의 추이를 살펴보기로 했다.
눈은 한결같이 맹렬할 듯했으나 11시가 넘으면서 약간 주춤했다. 동생은 수업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고, 작은 조카 우진이 역시 현재 프랑스에 연수 가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제수씨와 큰 조카 우현이가 커다란 김치통을 들고 12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마침 김치가 떨어질 때 되어서 조카가 김치통을 들고 들어오는 순간 정말 고마웠다. 아들도 12시 15분쯤 투덜대며 들어왔다. 아파트와 달리 주택가는 주차하기가 어렵다. 차 댈 곳을 찾느라 무척 애를 쓴 모양이었다. 12시 30분, 어제 미리 와서 이곳에서 잔 누나들과 제수씨, 조카, 아들, 나, 이렇게 여섯 명이 간단하게 엄마를 기리는 추도예배를 드렸다.
4년 전, 엄마가 소천하기 전전날에도 이곳에는 많은 눈이 내렸고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예배를 마치고 근처 식당으로 식사하러 가면서 큰누나는 “그때도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리더니. 하여튼 엄마는 눈과 인연이 많은가 봐”라고 말하며 두껍게 쌓인 눈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뒤따라가는 나의 눈에는 체구가 작은 큰누나의 보폭이 무척 아슬아슬해 보였다. 아들 수현이가 그런 누나와 팔짱을 끼고 걸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눈발은 드문드문 날렸으나 도로의 눈들은 거의 다 녹은 상태였다. 내가 슬쩍 “눈도 얼추 그쳤고, 도로 상황도 좋아졌는데 이왕 모인 거 애초 계획대로 묘역에 들러보면 어떨까?”하고 물었더니, 추위 타는 누나는 ‘글쎄’ 하는 표정으로 말이 없었으나 제수씨는 “그래요. 둘러보고 가요.” 했고, 아들 또한 “난 상관없어요” 했다. 그래서 출근 때문에 먼저 간 작은누나를 제외한 다섯 명은 두 대의 차로 가족 묘역으로 향했다.
명절을 앞둔 터라 다른 때 같았으면 오늘부터 무척 붐볐을 텐데, 폭설 때문인지 방문객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한산했다. 눈으로 뒤덮인 묘역 주변의 풍경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습기가 많은 눈이라서 밟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를 내며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우리는 어린애들처럼 일부러 뽀드득 소리를 듣기 위해 미답(未踏)의 눈 위를 밟고 또 밟았다. 무덤 속 엄마와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셨을지도 모르겠다.
각자 간단한 기도로 엄마와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린 후, 이번 여름에 소천한 매형을 만나러 근처에 있는 별빛당(납골당)으로 이동했다. 누나는 안치실 유리에 붙은 시든 꽃들을 모두 떼어낸 후 오늘 입구에서 산 생화를 새로 붙였다. 지난번에 보지 못했던 가족사진들이 새로 들어가 있었다. 사진 속에서는 젊은 시절의 매형이 붉은 티셔츠 차림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매형이 그리워졌다. 생전 누구보다 열심히 우리 가족 묘역을 가꾸고 챙기던 사람이었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안치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주차장에 내려와 제수씨와 헤어졌다. 아들 수현이가 나와 큰누나를 데려다주었다. 차 안에서 수현이는 큰누나에게 홍삼 선물 세트를 건네주었다. 아마도 자신의 롤모델인 사촌형 민규(큰누나 아들)에게 점수를 따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속으로 ‘제 아비에게는 주지 않으면서’ 하는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유치한 것 같아서 아무 말하지 않고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아들의 의도대로 누나는 상당히 감동했던지 집에 도착해서 전화해서는 “수현이가 참 대견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칭찬은 민규에게도 곧 전해질 것이다.
아무튼 새벽부터 내린 폭설로 인해 내심 걱정했던 엄마의 추도예배 일정은 시간만 바뀌었을 뿐 계획했던 대로 진행된 것 같아서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무엇보다 묘역에 들러 엄마와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덕분에 매형도 만나고 눈밭 위에 눈꽃도 찍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 먹을 때까지 줄곧 잤다. 꿈속에서 엄마를 만난 것도 같은데, 그게 가족들과 나눈 대화 속의 한 장면인지 꿈에서 새롭게 만난 장면인지 헷갈린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린 우엉과 인진쑥 구매 (1-7-화, 맑음) (0) | 2025.01.07 |
---|---|
모둠회와 메밀굴칼국수 (1-6-월, 흐림) (0) | 2025.01.06 |
모질고도 안타까운 이 겨울의 시간 (1-4-토, 늦은 밤에 눈) (0) | 2025.01.04 |
추억은 나의 힘 (1-3-금, 흐리고 가끔 눈) (0) | 2025.01.03 |
나의 평안함이 미안하다 (1-2-목, 맑음) (1) | 2025.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