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추억은 나의 힘 (1-3-금, 흐리고 가끔 눈) 본문
어제는 윤석열 탄핵과 체포 구금을 위한 인천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열린 집회에는 3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는데, 다행히 집회가 열리는 동안에는 날씨가 춥지 않았다. 하지만 집회가 끝날 때쯤 바람이 불고 날이 급격하게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만난 익숙한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후배 미경과 갈매기로 이동해 소주 한잔하고 있을 때 이우재 선배도 후배 상우와 몇 명의 일행들과 갈매기에 나타났다. 합석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우재 형이 자연스럽게 우리 테이블 옆에 자리를 잡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지인들도 하나둘씩 갈매기로 몰려들었고 나와 미경은 한 시간쯤 앉아 있다가 먼저 나왔다. 합석한 일행들의 전사(前史)를 이미 알고 있고 그들이 옆자리에서 펼치고 있던 일화들도 이미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던 터여서 재미가 없었다.
예술회관 교차로 앞에서 미경과 헤어져 돌아오다가 충동적으로 만수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카페 ‘산’이 있는 간석동으로 향했다. 카페는 한산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두 테이블에 각각 손님이 두 명씩 앉아서 술 마시고 있었다. 사장인 후배 성식은 무척 반가워하며 “혁재에게도 연락할까요?” 했는데, 내가 그만두라고 했다. 연락하지 않아도 늘 이곳에 들르던 혁재인데,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게다가 나는 잠깐 들러 소주 한잔 정도 마시고 갈 생각이었는데, 만약 혁재가 나타나면 술자리가 새벽까지 이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성식이 무대로 나가 손님들의 신청곡을 라이브로 들려주었고, 성식의 노래가 끝나자 젊은 손님들이 나와 성식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하나 같이 가수처럼 노래들을 잘했다. 노래 때문이었을까,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소주 1병을 더 마셨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내가 자꾸만 맥주를 권해 맥주도 한 병 마셨다.
카페 ‘산’은 밤이 깊어 갈수록 손님들이 많아졌다. 아마도 다른 곳에서 1, 2차를 하고 ‘딱 한 잔만 더 마시자’라는 생각으로 찾아오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다채로운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새벽 1시쯤 술값을 받지 않으려는 성국이와 실랑이하다가 ‘간신히’ 술값을 계산한 후 그가 불러준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날이 부쩍 추워진 걸 느낄 수 있었다. 뭐랄까, 산 카페에 가면 가슴속에 묻혀 있던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통기타 선율과 익숙한 노래들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다가도 문득 쓸쓸해지곤 한다. 그 노래를 듣던 시절로부터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겨울밤은 그 쓸쓸함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쓸쓸함을 즐긴다. 그 쓸쓸한 감상에 버무려진 빛바랜 추억들이 오히려 가끔은 나의 현재를 지탱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돼주기도 한다. 어제 나는 그곳에서 잠시 쓸쓸했고, 그래서 뜨거워진 가슴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앞으로도 가끔 산에 들를 생각이다. 특히 마음이 답답할 때나 하루하루가 너무 평범해서 도무지 심장의 격동이 느껴지지 않을 때, 이곳을 찾아 쓸쓸해지고 싶다.
오늘은 종일 청소하고 영화보고 잠을 잤다. 가끔 후배들에게 전화가 걸려왔지만 나가는 않았다. 은준은 낮술의 성지를 찾았다며 자신이 술을 사겠으니 동인천에서 만나자고 전화했지만, 컨디션을 핑계로 거절했다. 정치판의 형세는 사람들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모양이다. 안타깝다. 그래도 희망을 포기할 순 없다. 거짓과 몰상식이 진실과 상식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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