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우연과 필연에 관하여 (10-20-일, 맑음) 본문

일상

우연과 필연에 관하여 (10-20-일, 맑음)

달빛사랑 2024. 10. 20. 22:43

 

교회에서 예배 보고 나온 누나들이 연락해 함께 점심 먹었다. 큰누나 입맛이 까다로운 탓에 (순댓국이나 추어탕을 안 먹는다) 갈 곳은 대개 정해져 있다. 오늘은 집 근처 감자탕집에 들러 뼈해장국을 먹었다. 전골로 먹지 않고 각자 한 그릇씩 탕으로 먹었다. 큰누나는 해장국에 담긴 돼지 뼈 대부분을 건져 나에게 주었다. 그래서 나는 얼추 2인분을 먹은 셈이다. 아침을 먹지 않은 까닭에 누나 몫의 고기까지 먹어 치우는 일이 버겁지는 않았다. 큰누나는 이제 어느 정도 매형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동생으로서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다 정리된 줄 알았는데, 아직도 매형의 옷(바지와 티셔츠)들이 장롱 속에 많이 남아 있더라. 다 새것이야. 언제 시간 내서 가져가”라고 말할 때는 잠깐 쓸쓸한 얼굴이 되었다.


몇 차례 뜻밖의(갑작스러운) 헤어짐과 만남을 경험하면서 우연과 필연의 경계에 관해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내린 결론은 우연과 필연은 뫼비우스띠처럼 이어졌다는 것이다. 숱한 우연 중에 하나의 우연이 나를 찾아온 것도 어찌 보면 필연이고, 필연이라고 생각한 모종의 일이 세월이 흐른 후 되돌아보니 그저 하나의 우연일 뿐이었다는 것. 아내와 나는 수십 년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는데, 단지 학교라는 매개로 어느 날, 그야말로 ‘갑자기’ 만나게 되었다. 그건 지극히 우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화하다 보니 여러 면에서 가치관이 일치한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 확신은 우리 만남에 필연성을 부여했다.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살다가 우리는 헤어졌다. 이 헤어짐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그것을 구분하는 일은 사실 부질없는 일이다.

 

매형과 누나의 만남, 매형의 뜻밖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길고 긴 시간 속에서 뫼비우스띠처럼 연결된 채 반복되는 우연과 필연을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나는 요즘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연이면서 동시에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연이라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도 없고 필연이라고 해서 기뻐할 이유도 없다. 불행에도 우연한 불행과 필연적(인재와 같은) 불행이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세상 모든 것이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든 ‘신들의 주사위 놀이’라고 믿든 어차피 사람은 단 하나의 세계 안에서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흐름은 이 거지 같은 세상을 견뎌내기 위해 내 나름의 방식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내 생각의 논리의 정합성을 따지는 일이 의미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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