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갑자기 추워졌다 (10-21-월, 흐리고 가끔 비) 본문
종일 구름이 많고 흐렸으며 기온마저 뚝 떨어져 을씨년스러운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흐린 날, 이를테면 비를 기대하게 만드는 날이 좋다. 사실 더위 타는 나로서는 며칠 되지 않는 가을날에 대해 호불호를 따질 처지가 아니다. 한마디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까지는 가을의 모든 날을 나는 사랑한다.
인사위원회 회의차 전 비서실장 박이 청에 왔다가 회의가 다소 일찍 끝나서 우리 사무실에 들렀다. 그간의 근황을 묻고 대답하다가 다른 날보다 조금 빠르게(11시 40분쯤) 점심 먹으러 나갔다. 오랜만에 교육청 후문에 있는 두부 전문점 ‘삼만시(옛 정가네순두부)’에 갔는데, 어찌나 손님이 많은지 박 실장과 친한 후배 장학사 현기가 예약하지 않았으면 한참 기다리다 먹을 뻔했다. 나와 보운 형, 박 실장과 현기는 청에서부터 함께 갔고 박 실장의 또 다른 후배인 중등교육과 장학관 성찬은 식당에서 합석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시청 교통국장인 후배 김 모와 그 일행들이 들어와 인사를 했고, (김은 내가 민예총에서 일할 때 문화체육관광국 팀장이었다) 뒤이어 교육청 직원들도 부서별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 식당 음식이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몰려드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순두부와 청국장 한 그릇 가격이 11,000원, 결코 싼 편이 아니다.
점심 먹고 근처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 헤어졌다. 오늘 박 실장은 짙은 군청색 코트를 입고 왔다. 속으로 ‘웬 코트, 아직 겨울도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람이 불고 날도 흐리니 그의 옷차림이 TPO에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긴팔 후드티 속에 반소매 티를 입고 있었는데, 잠깐 썰렁하긴 했지만 춥진 않았다.
퇴근 무렵, 후배 상훈에게 전화 왔다. 오늘은 정말 술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쓸쓸하니 술 사달라는 후배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6시 반쯤 인천집에서 만나 소주 4병을 나눠마셨고, 2차로 늘 가는 LP 카페 ‘비틀스’에 들러 맥주 5병을 마셨다. 그곳에서 한 시간쯤 음악을 듣고 3차 없이 헤어졌다. 오랜만에 늦은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요즘에는 술 마시면 취하지는 않는데 이튿날 속이 더부룩해진다. 내일은 어쩌려나 모르겠다. 내일부터는 정말 노 알코올이다!
그나저나, 다만 한가지 말하고 싶은 건, 인천 지하철 2호선은 (지하철 운영상) 적자가 많아도 술 취한 나를 새벽 1시 전까지는 기특하게 집까지 데려다 주는 천사 같은 노선이라는 것, 이를테면 (역 주변 한정) 단골집에서 술 마시다 12시 30분까지만 플랫폼에 닿으면 전동차가 그때까지 나를 기다려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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