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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이럴 리가 없는데, 뭐지 이 느낌은? (8-27-화, 소나기) 본문

일상

이럴 리가 없는데, 뭐지 이 느낌은? (8-27-화, 소나기)

달빛사랑 2024. 8. 27. 22:44

 

술 마시고 잠든 탓에 새벽에 목이 말라 잠깐 잠이 깼다. 다행히 술을 섞어 마시면 나타나던 메슥거림은 없었다.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4시, 평소 같았으면 다시 잠들지 못하고 일어났을 텐데, 숙취 때문인지 이내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일어난 시각은 8시, 창밖이 어두컴컴했다. 날이 흐린 모양이었다. 빅스비에게 '오늘의 날씨'를 물었더니 흐리기만 할 뿐 비 소식은 없었다. 서운하진 않았다. 빅스비 예보는 종종 틀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특히 소나기 예보는 자주 틀린다. AI인 빅스비조차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내리다가 그치는 올여름 소나기의 '자유분방함'은 예측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경험을 바탕으로 대충 가늠해 본다. 빅스비는 한 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가 아니면 '강우'라고 예측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도 몇 차례의 소나기가 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예상이 맞았다. 두 어 차례 소나기가 잠깐 내렸고, 날은 이내 갰다. 

 

잠에서 깼을 때 극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이런 경우는 드문데, 아마도 쓰린 속을 다독이려면 뭔가 음식이 필요하다고 뇌가 판단했던 모양이었다. 주방으로 가 미역을 꺼내 물에 담가 불리고, 곰탕팩이 남아 있는지 냉장고를 확인했다. 다행히 500ml 두 팩이 남아있었다. 밥통에 밥도 충분했다. 곰탕국물에 미역과 계란(단백질 보충 목적)을 넣어 미역국을 끓인 후, 작은누나가 만들어 준 가지볶음과 오이지무침을 반찬으로 늦은 아침을 먹었다. 속이 편해졌다. 숙취도 말끔하게 가신 것 같았다. 한 시간 운동해서 컨디션을 회복한 후 가벼운 차림으로 사무실에 출근했다. 거리를 걸어도 땀이 나질 않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쾌적함이었다. 

 

두 시쯤, 정렬 형과 정민 형, 후배 창곤이 사무실에 들렀다. 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정렬 형의 전시회를 관람한 후 함께 청사에 들른 것이다. 창곤은 교육청에서 회의가 있어 두 시쯤 먼저 사무실을 나가고, 두 형은 좀 더 앉아 대화하다 교육청 내 다른 지인의 사무실을 들러본다며 나갔다. 정렬 형과 정민 형, 두 선배 모두 정년퇴임을 한 후 연금을 받으며 유유자적 한량처럼 살고 있다. 무척 부럽다. 정렬 형은 최근에 작업실을 옮긴 후 창작에 매진하고 있는데 지난 주  전시에서 만난 작품을 보면, 고민하는 주제가 '일상인의 하루'(그동안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이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려왔다)를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하는 것에서 해양 생태 쪽으로 바뀐 것 같았다. 무엇을 그리든 나는 열혈 팬으로서 형의 작업을 응원한다. 


희한하다. 가을이 가까워져서 그런가 자주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이런 마음의 상태가 나쁘진 않은데, 낯설다. 이러한 마음을 느껴보지 않아서 낯설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이런 설렘이나 싱숭생숭함을 왜 모르겠는가. 다만 언제부터인가 설렘과 같은 달달한 감상은 나를 떠나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말고는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지도 않았고, 딱히 외로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아니 그렇다고 믿어왔다. 자기 세뇌였을까. 아무튼 그렇다. 그런데, 요즘 다시 마음속에서 설렘이 느껴진다. 계절 탓일까? 이 설렘은 꼭 이성에 대한 설렘만이 아니다. 문학, 구체적으로는 시에 대한 설렘이기도 하고, 모종의 상황에 대한 설렘이기도 하며, 뭔가 새로운 시도에 대한 자신감 같은 것이기도 하다. 아직 정체는 모르겠다. 좀 더 생각해 봐야하겠지만,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느낌, 하여 어느 순간부터 낯설어진 그 설렘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아 낯설면서도 반갑다는 것이다. 가을 때문일까? 그렇다면 무뎌진 숱한 마음들에게 가을은 얼마나 자애로운 계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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