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무모하거나 재미있거나 (7-14-일, 맑음) 본문
가끔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판단을 내릴 때가 있다. 이를 테면 오늘 같은 즉흥적인 만남 같은 것. 떨어질 듯 떨어질 듯하면서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감기가 밉광스러워서 술을 진탕 먹고 죽은 듯 잠을 자서 떨쳐보려고 작정했다. 이른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끝낸 후 꾸벅꾸벅 졸다가 오후 2시쯤 은준에게 전화해 "냉면 먹으면서 낮술 한잔할까?" 했더니, 은준은 잠시 망설이다 "지금 빨래 돌리고 있어요. 3시 30분에 냉면집에서 보지요" 했다.
전화를 끊고 의자에 기대서 '깜빡 잠'을 잤다. 3시쯤 일어나 세수하고 외출준비를 했다. 냉면집까지는 걸어가도 되는 거리였으나 날이 너무 뜨거워 버스를 탔다. 냉면집에 도착했을 때, 은준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맛집답게 손님들이 많았다. 수육과 빈대떡, 소주를 시켜서 먹다가 소주 두 병째 마셨을 때 냉면을 시켜서 함께 먹었다.
뜻밖에 그곳에서 제고 후배 S를 만났다.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유부녀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을 대동했다. 나를 보더니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었으나 이내 성큼성큼 걸어와 "형님, 안녕하셨어요?" 하고 인사했다. 나는 타인의 사생활에 비교적 관대한 편이어서 그를 '그런 방식'으로 만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특히 남녀상열지사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나는 오래전 그의 소개로 플루트 연주자인 여성을 사귄 적이 있다. S는 그녀에게 기타(guitar)를 가르치는 악기 선생이었다. 악기 연주에 욕심이 많았던 그녀는 플루트 연주자이면서도 드럼과 기타, 하모니카와 색소폰 연주 등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2년 정도 사귀었고, 당시 방통대를 다니던 그녀를 위해 논문을 써주고 시험 준비를 해줘서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정말이지 그녀가 제때 졸업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나의 도움 때문이었다. 그녀도 그걸 안다.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별의별 허튼짓을 다한 셈이다. 그러다가 누가 헤어지자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다른 것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오늘 식당에서 후배 S를 만나니 잠시 옛 생각이 났다.
그나저나 아까 S가 대동하고 온 두 명의 여성 중 한 명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녀는 우리가 찾은 냉면집 직원이었다. 몇 주전 나와 은준이 냉면집을 찾았을 때, 서비스로 빈대떡을 내주기도 했던, 인상 좋았던 직원. 그래서 아까 손님이 몰릴 때 비틀대며 서빙을 했던 거로군. 그때는 속으로 '웬 오버야, 손님 주제에'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취했는 걸.... 그러다 쟁반을 뒤집으면 어쩌려고..... 아무튼 세상 참 좁다.
냉면집을 나온 우리는 만수역 앞으로 와서 늘 가던 실내 포장마차에 들어가 소주 한잔을 더 한 후, 과일과 캔맥주를 사서 집으로 왔다. 집에서 소주 한 병에 맥주 2캔씩을 나눠 마신 후 좀 전에 헤어졌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은준이 사온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목이 약간 거북하다. 기침도 잦아졌다. 다시 감기가 도지는 것인가? 음주로 술을 떨쳐버리려던 생각은 무모했던 것 같다. 눈도 아프다. 눈알을 살펴보려고 거울 앞에 섰는데, 확실히 눈이 부어 있다. 거울 속의 나에게 몇 마디 말을 던져봤다. 대답이 없다.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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