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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총량의 법칙 (6-6-목, 맑음) 본문

일상

총량의 법칙 (6-6-목, 맑음)

달빛사랑 2024. 6. 6. 22:37

 

근거가 있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에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 있다. 총량 뒤에 법칙이란 단어를 붙여 무게감도 더했다. 가장 자주 언급되는 건 술과 섹스의 총량의 법칙이다. 한 사람이 일생 먹을 수 있는 술의 양과 섹스의 횟수는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총량을 적절하게 안배하면 젊을 때나 늙을 때나 비슷한 횟수로 술 마시거나 섹스를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즉, 젊었을 때 과도하게 술 마셔 이미 총량에 근접했다면) 늙어서는 무기력하게 지내거나 현저하게 횟수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실 사람은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체력적인 이유로 술 마시고 싶어도 먹을 수 없게 되고, 섹스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는 게 당연한 일인데, 굳이 총량의 법칙 운운하는 건 노화에 대한 비애감을 희석하기 위한 일종의 말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말이 사실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실 나는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지인들은) 젊은 시절 과도하게 술을 마셨다. 정말 사람마다 음주의 총량이 있다면, 우리는 아마 3~40대에 이미 각자의 총량을 얼추 채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법칙에 의하면) 요즘에는 마실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 실제로 작년까지만 해도 매일 마셔도 술이 맛있었다. 체력도 어느 정도 뒷받침해 주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술이 매일 당기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끊을 생각이 있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일주일에 연거푸 술 마시는 일은 거의 없다. 새벽까지 먹는 일도 없어졌다. 어느 정도 마시면 피곤해지고 집에 가고 싶은 생각만 자꾸 든다.❚ 오늘 은준은 자신의 동네인 제물포역 앞에 무한리필 고깃집 ‘명륜진사갈비’가 개업했다며 내게 전화했다. 다이어트 중이라서 거절하려다가 고기를 사주고 싶다는 그의 말이 하도 간곡하여 결국 5시, 개업 행사 시간에 맞춰 은준을 만났다. 식당은 이미 인산인해였다. 번호표를 받고 한참을 기다린 후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갈비와 목살과 5겹살과 닭갈비를 먹고, 소주를 마셨다. 그런데 우리가 마신 술은 고작 둘이서 한 병이었다. 은준은 더 마시고 싶어 했으나 내가 술이 싫었다. 식당을 나와 근처 맥줏집에 가서 간단히 맥주 한잔하고 헤어지자는 은준의 제안도 거절하고 그냥 좀 걷자고 했다. 술보다는 그냥 걷고 싶었다. 수봉산 입구까지 걷다가 제물포역으로 다시 돌아와 15번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아쉬움이 가득한 은준과 헤어져 돌아오면서 문득, ‘드디어 나도 총량의 법칙에 지배되기 시작한 건가’ 하고 생각했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 대개 그렇다. 물론 컨디션이 좋고 오랜만에 마시는 날에는 막걸리 3병까지도 마시긴 하지만, 이전에 비해 확실히 양이 줄었고 (술자리에 대한) 흥미도 줄었으며 피곤함도 쉬 느낀다.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확실히 나는 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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