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11월의 끝날, 배려와 욕망 그 어디쯤 (11-30-목, 맑음) 본문
오전에 치과에 들러 아랫니의 본을 뜨고 오후에는 후배들과 1차 갈매기, 2차 맞은편 후배의 고깃집을 차례로 들러 술을 마셨다. 요즘에는 몸 관리하는 동안 마시지 못한 술을 한풀이하듯 마시고 있다. 내 성격상 조만간 다시 관리의 고삐를 죄긴 하겠지만, 연말연초에는 마음 가는 대로 놓아둘 생각이다.
아무튼 당연하게도! 오늘 술값은 많이 나왔다. 갈매기에서도 빤히 보이는 앞집으로 후배가 장사를 하겠다고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걱정했다. 불경기에 돈 벌겠다고 들어올 공간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진 않아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갈매기를 갈 때마다 종우 형에게 묻기도 하고, 내가 직접 보기도 해서 상황의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었다. 손님이 한 명도 없는 텅 빈 가게에서 부부가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술 마시다가도 나는 갈매기 유리창 너머로 후배의 가게를 흘깃거렸다. 그러다가 후배와 눈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아, 그때의 그 곤혹스러움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내가 동기들에게도 열심히 홍보해 주고 직접 방문해서 몇 차례 술도 팔아주었지만 상황이 의미 있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얼마 전 들렀을 때는 가게를 내놔야 할 것 같다는 후배의 말을 듣기도 해서 그간의 상황이 궁금했는데, 오늘 와서 갈매기 형에게 물어보니 대책 없이 그저 하루하루 버텨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오늘 갈매기에 들러 장은준과 둘이서 술 마실 때는 절대 앞집에 눈길 주지 않으리라 마음 단단히 먹었는데, 아뿔싸, 결국 후배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순간 탄식이 나왔다.
상큼한 굴이 먹고 싶었는데, 종우 형이 가져다준 생굴은 너무 짜고 맛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배고프다는 은준을 위해 두부 한 모를 추가로 주문했다. 은준과 소주 두 병을 나눠마신 후 종우 형에게 양해를 구한 후(사실 양해 구할 것도 없었지만, 아무튼) 앞집으로 건너갔다. 종우 형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목적의식적으로 후배 가게에 들른 우리는 갈매기살, 삼겹살, 장어구이 등 다양한 안주를 마구 시켰다. 나중에는 송도에서 일을 마친 상훈도 합류했다. 그러는 사이 효숙 누나와 갈매기를 찾은 승미가 잠깐 우리 자리에 다녀갔다. 담배 피우러 나갔던 은준이를 본 모양이었다. 표정도 몸도 많이 좋아 보였다. 다행이었다.
후배 집을 나와서 3차로 근처 맥줏집에 들러 생맥주를 마셨다.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최근 술을 마시면 기억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기 일쑤다. 완전히 취하기 전에 술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던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다. 집에서 한잔하자는 말로 꼬드겼던 걸까, 은준이 집까지 나를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3차까지 술 마시고도 더 하자고 꼬드긴 나도, 그 말에 우리 집까지 따라온 은준도 대책 없는 인간들이다. 그게 아니라 내가 취한 거 같아 걱정스러워 데려다준 거라면, 정말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내일 확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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