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후배와 전가복에서 짬뽕을 먹다 (11-07-화, 흐림) 본문
비번이라 집에서 쉬고 있는데, 오후 2시쯤 후배 은준에게 전화가 왔다. 날도 우중충하고 갑자기 추워지니 우리 집 옆에 있는 정통중화요릿집 '전가복' 짬뽕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형, 짬뽕 당기지 않아요? 내가 형네 동네로 갈 테니까 같이 전가복에서 짬뽕 먹지 않을래요?" 했다. 나는 "싫어. 나 면 요리 안 먹은 지 꽤 됐어. 그리고 짬뽕이 나오면 술 마실 게 뻔하잖아. 많이는 아니지만 어제도 훈이랑 술 마셨는데, 오늘 또 술 마실 수는 없어" 했더니, "형은 마시지 마세요. 식사만 하고 술은 안 마시는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 보세요"하며 살살 꾀었다. 할 수 없이 6시에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여간 일생 도움이 안 되는 후배 녀석들 같으니라고.
은준은 5시 50분쯤 전가복에 도착해 나에게 전화했다. 옷 챙겨 입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나갈 수 있었다. 그는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그 역시 어젯밤 술 마신 모양이었다. 우리는 짬뽕과 탕수육 작은 것, 그리고 소주를 주문했다. 잠시 후 짬뽕이 나왔을 때, 눈물 날 뻔했다. 혈당 관리 때문에 서너 달 만에 먹어보는 매콤한 짬뽕맛은 정말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했다. 이전에 탐닉하던 맛, 건강 때문에 잊고 있던 익숙한 맛을 오랜만에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은준은 "맛있지요?" 하며 내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며 그것 보라는 표정으로 씩 웃었다. 나는 "아, 몰라. 오늘은 치팅데이라고 생각하고 맛있게 먹어볼래." 하며 짬뽕 면발 한 가닥 한 가닥을 음미하듯 먹었다. 왜 몸에 좋은 건 입에 쓰고, 몸에 안 좋은 건 하나같이 달고 맛있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짬뽕과 탕수육, 소주 2잔을 먹고 마신 후, 전가복을 나와서 잠시 어디 갈까를 고민하다가 "형네 집 가서 시집들 좀 구경하면 안 될까요. 집에 커피는 있을 거 아니에요?" 하는 은준의 말을 듣고 함께 집으로 와서 커피 마시며 이러저러한 대화를 나눴다. 주로 그가 고민하고 있는 신춘문예와 시에 관해 이야기했고 그가 궁금해 하는 것들에 관해서도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몇 권의 책을 그에게 주었다.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은 잠깐 들춰보더니 "안 가져갈래요. 읽게 되지 않을 거 같아요" 하고는 도로 내려놓았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누고 그는 돌아갔다. 오늘 만남은 무척 담백했다. 아참,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은준이가 보는 앞에서 혈당을 측정해 봤는데, 생각보다 낮게 나와 무척 놀랐다. 물론 기분 좋았다.
은준은 오늘, 자신이 차고 다니는 시계와 똑같은 모델의 시계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을 나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기는 문학적 멘토에게 시계쯤이야. 하하하!) 아무튼 어제와 오늘, 무척이나 결이 다른 두 후배를 연거푸 만났다. 벗이 있어 친히 방문해 주니 고마운 일이긴 한데, 건강에 관한 나만의 루틴이 깨져버릴까 걱정도 된다. 거절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나의 성품 탓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오늘처럼 식사만 하고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셨지만, 그건 평소 우리의 주량을 생각하면 입술만 적신 것이다) 차담을 나누다 헤어진다면 몇 번을 만나도 괜찮을 것 같긴 하다. 밤이 되면서 거센 바람은 다소 순해졌다. 내일이 입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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