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학생인권조례 유감 (8-4-금, 맑음) 본문
학생인권조례는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최근 임용된 지 얼마 안 된 초임 교사가 일부 학부모들의 도 넘은 갑질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해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러한 때에 일부 보수 세력들은 ‘학생인권조례 책임론(폐지론)’이라는 희한한 프레임을 유포 중이다. 그러면서 작금의 비극은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데 한몫한 전(前) 정권, 그리고 그들과 뇌동한 진보 교육감들 때문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진보 교육감들이 학생들의 인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람에 교사들의 인격과 권리가 땅에 떨어졌다는것이다.
이 무슨 황당한 견강부회란 말인가? 학생인권조례는 앞에 ‘학생’이란 단서가 붙었을 뿐이지, 말 그대로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인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따라서 그 조례는 단순히 학생을 위한 조례가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를 비롯한 모든 교육 가족이 아름답게 공존하기 위한 약속이다. 점수와 체벌이 규율의 근거가 된 기존의 학교 질서에서 교사들 역시 많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특히 교칙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던 심각한 체벌은 미봉적이었을 뿐 학교 폭력이나 학생들의 건강한 학교생활에 전혀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교사와 학생 간의 거리감을 증폭시켜 학생 교육의 어려움만 가중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을 바꿔보려는 진지한 노력의 결실이 바로 학생인권조례다.
결국 학생인권조례는 인권이 침해되는 학교 안팎의 모든 상황과 그 피해자를 염두에 둔 조례이므로 교사의 인권 침해 역시 이 조례와 무관하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다. 권위주의적 분위기가 지배하는 질서 안에서는 교사라고 안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생을 단지 통제하고 억압해야만 말을 듣는 피동적 존재로 여기는 수직적 학교 문화는 교장, 교감, 평교사의 관계 역시 수직적으로 만들 개연성이 농후하다. 그러한 계급적 질서 안에서 교사가 맘 편하게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교육을 펼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어찌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만을 위한 기울어진 조례라고 말할 수 있으며, 교사의 권리를 축소한 주범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은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이들이 힘을 합쳐, 교사와 학부모는 물론 조례의 취지를 오해하고 있는 많은 국민에게 학생인권조례의 합리적 핵심을 알리고 설명하는 일이다. 현재 국민의힘과 보수진영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마치 학생들의 방종조차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것처럼 호도하며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교육 가족 모두의 상생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례라는 걸 지속해서 설명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진실에 귀를 닫은 채 학생의 인권이 좋아져 상대적으로 교권이 축소되었으니 학교를 살리고 교권을 회복하려면 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권의 ‘인’자도 모르는 단견의 소치이거나 뭔가 반사적 이해관계에 얽힌 정치적 제스처가 아닐 수 없다. 즉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를 주장하는 세력들은 ‘교권’을 핑계로 자신들의 목적을 실현하고자 하는 석연찮은 의도가 의심된다.
지난 2010년 경기도에서 최초로 공포된 이후 학생인권조례는 그 행로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올해만 해도 서울, 충남 등지에서 조례 폐지를 위한 움직임이 나타났고, 경기와 전북 등에서는 교육감이 직접 나서서 학생인권조례 축소를 약속하기도 했다. 대체로 작년 지자체 선거에서 새롭게 당선된 여당 소속 시의회의원들과 보수 교육감들이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데, 교육에 관한 소신보다는 인권을 볼모로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보수정치 세력의 반인권적 행보에, 정치적 야심이 있는 보수 교육감들이 학생의 인권이나 학교의 민주화를 먼저 고민하기보다 주관 없이 정치에 호응한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인권이 강조되는 나라의 학생과 국민은 비판의식도 그만큼 강할 테니, 내심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일부 보수 세력들에게는 학생이든 국민이든 인권 감수성이 충만해지는 것이 그리 탐탁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의 학생들에게 ‘제자는 결코 스승의 그림자조차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면 “웬 오버!” 하며 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때의 웃음은 비웃음이 아닐 거라고 나는 믿는다. 오늘날의 학생들이라고 해서 스승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왜 없겠는가. 다만 그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채로워졌을 뿐이겠지. 현실의 교육 현장은 이러한 학생들의 변화된 의식을 반영하여 ‘새로운’ 사제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여기서 ‘새로움’이란 학생을 교화와 규제의 대상이 아닌, 교육 현장의 능동적 주체로 인정함으로써 교사와 제자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성장하는 건강한 관계라는 의미에서의 ‘새로움’이다. 그것을 위한 작은 초석이 학생인권조례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학생인권조례는 지켜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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