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명절이 모두에게 고루 환한 건 아니야 (01-22-일, 흐림) 본문
새벽 4시쯤 잠이 깼다. 일어나진 않고 유튜브를 틀어놓고 그냥 잠자리에 누워있었다. 다시 잠이 오길 바랐지만 달아난 잠은 돌아오지 않았다. 컴퓨터 VOD 목록에서 쇼 프로그램 두어 개를 선택해 시청하고 나니 창밖이 훤하게 밝아왔다. 6시쯤 일어나 잠자리를 정리한 후 얼마 전에 사둔 복권을 맞춰봤다. 2장이 6등(상금 5천 원)에 당첨됐다. 복권 2장을 더 살 수 있게 되었다.
세수하고 방 정리한 후 아침 먹을까 하다가 관두었다. 밥맛도 딱히 먹을 것도 없었다. 예배자료와 제수씨에게 줄 금일봉, 금요일 제대하는 조카 우진에게 줄 세뱃돈을 챙겨서 가방에 넣어놨다. 명절 때마다 아들은 9시 30분쯤 나를 픽업하러 집에 오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나 스스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연수동으로 출발했다. 선학역을 지날 때쯤 아들에게 전화해 가고 있으니 올 필요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요?" 묻는 아들의 목소리가 약간 갈라져 있었다. 간밤에 술 마시고 늦게 잠든 모양이다. 아우 집에는 정확히 9시 28분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머리를 짧게 깎은 둘째 조카 우진이가 문을 열어주었다. 머리가 짧아서 그런지 고등학생처럼 앳돼 보였다. 내 목소리를 듣고 방 안에 있던 아들과 큰 조카가 거실로 나와 인사했다. 아들은 살이 좀 붙은 모습이었다. 8월, 아버지 기일에 보고 5개월 만에 보는 것이다. 관계만 부자지간일 뿐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제수씨를 제외하고 다들 거실 탁자에 둘러앉았을 때, 아우가 문득 진지한 표정으로 “그나저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예배 볼 생각이세요?”하고 물었다. 처음에는 그 질문의 의도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아우는 “저도 그렇지만, 애들 가운데 신앙이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서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후 아들과 조카에게 “너희는 (기독교) 신앙이 없니?” 하고 묻자 이구동성으로 “네!” 하고 대답했다. 가슴속에서 뭔가 묘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당연함과 서운함이 뒤섞인 정말 묘한 감정이었다. 억지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할머니의 생전 소원이자 기도의 가장 큰 제목이, 제발 자손들이 신앙 잃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잖아? 가끔은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거야” 웃으며 말했더니, 아이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주방일을 마치고 거실로 온 제수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저는 예배 보는 건 상관없어요. 뭔가 거룩한 느낌도 나고 해서요. 다만 명절 음식 만드는 게 이제 힘에 부치네요. 어머님 생전에는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했는데, 이제는 너무 힘들어 그만하고 싶어요. 차라리 기일이나 명절 때 가족들끼리 외식하면 안 될까요?” 정색하고 말했다. 내 처지에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장남인 내가 해야 할 일을 그동안 아우와 제수씨가 대신해 왔으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네, 제수씨. 안 그래도 이제는 간단하게 예배만 보거나 밖에서 외식하는 것으로 명절이나 기일 행사를 대신하자는 말을 아우와 하고 있었어요. 앞으로 그렇게 하지요, 뭐.”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 엄마가 이러한 대화를 보고 있었다면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형식적인 것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모든 게 다 없어져야 할 허례허식이야”라고 가볍게 이야기하는 아들의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오히려 서운하고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가 가고 나면 아들과 조카 세대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조상을 기억할 것이고 (과연 추모하기는 할까?) 그건 그 아이들의 몫이니 내가 걱정할 건 아니지만, 구세대의 방식을 모두 낡은 것으로 여기고, 사라져야 할 허식쯤으로 여기는 태도는 납득할 수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렇게 한 세대가 저물고 새로운 세대가 오고 있는 것을.
세배하고 덕담하고 식사하고 대화한 후 12시쯤 일어났다. 아들은 나를 내려준 후 곧장 집으로 갔다. 내가 그러라고 했다. 그게 나도 편하다. 그래야 서로 쉴 수가 있으니까. 제수씨가 싸준 잡채와 전 등속을 냉장고에 정리해 놓고 낮잠을 잤다. 꿈도 없는 단잠이었다. 일어나니 3시, 챙겨준 잡채에 밥을 비벼서 어제 먹다 남은 김치찌개와 함께 먹었다. 약간 쓸쓸한 하루였다. 다시 생각해도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우 내외는 물론 아들과 조카들까지) 신앙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놀라웠다. 집 안의 기둥 같았던 어른 한 분이 우리 곁을 떠나면 이렇듯 크나큰 정서의 싱크홀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은 하루였다. 아마 우리 가족은 점점 더 관계가 소원해져 갈 것이다. 그들은 나를 딱히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들조차 이제는 내 손을 떠났다. 가장의 권위는 다양한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건 경제적 능력이다. 예술가의 삶을 사는 내가 재력을 뽐낼 일은 만무하다. 철없는 아들이 내 예술가적 감수성을 사랑하고 인정하며 나를 존중해줄 가능성은 단연코 없다. 먼 훗날, 자신도 한 아이의 아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와 가장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겠지. 바보 같 내가 그랬던 것처럼……. 쓸쓸한 순환 고리다.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다. 엄마, 아버지,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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